장보고는 바다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여 신라, 당, 일본 3국간의 교역은 물론 멀리 이슬람세계와도 교역한 우리 역사상 유래가 없는 글로벌 CEO이다.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는 나·당·일의 중앙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해상질서가 무너지는 격변의 시기이며, 조공무역에서 사무역으로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국제질서 태동에 일찍 눈을 뜬 장보고는 강력한 해상관리자가 되어 동북아의 신흥무역세력으로 성장한다. 그가 주도한 무역은 금융, 선박대여 등 관련 서비스를 병행함은 물론 대금을 먼저 받고 물품을 공급하는 신용거래를 하는 등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민간무역을 꽃피웠다.
9세기 청자는 오늘날의 반도체에 버금가는 최첨단 제품이자 고부가가치 명품으로 중국에서만 생산되었다. 장보고는 청자의 국산화를 위해 도공들을 국내에 데려와 직접 생산하여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했고 전수된 기술은 우리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고려청자의 모태가 되었다. 장보고 상단은 단순한 무역뿐만 아니라 정부무역 대행, 운송, 선박건조 및 수리, 금융 및 정보제공 등 각종 서비스산업도 병행하고 당과 일본의 주요항구에 지사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오늘날 종합무역상사이자 다국적 기업 마인드로 활동하였다.
장보고는 당과 일본에 흩어져 거주하던 백제, 고구려 유망민과 신라인을 자신이 구축한 무역네트워크에 적극 편입시켜 국내외를 연결하는 한민족 경제공동체를 이끌었다. 이는 포용력, 진취성과 개방성으로 대표되는 장보고의 글로벌 리더십으로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공유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중화경제권과 유대경제권의 부상을 볼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세계는 지식기반사회로서 부가가치 창출이 생산, 판매가 아니라 미적 감각, 독창적 아이디어, 기술, 브랜드, 디자인 등 양질의 서비스에서 나온다. 전통적인 생산요소인 토지, 자본, 노동보다도 지식과 정보가 더욱 중요하다. 교육열이 높고 인적자원이 많은 우리에게는 기회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경쟁할 제2의, 제3의 장보고, 글로벌화된 인재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