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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해양교육의 장

인간과 바다

바다는 인류의 고향이며 모태

바다의 면적은 약 3억 6천만㎢로 지구 전체 표면적인 5억 1천만㎢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푸른빛을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구에는 약 13억 8,500만㎢의 물이 존재한다. 이 물의 97%가 넘는 13억 5,000만㎢가 바닷물이며, 모든 생명체는 태초의 바다에서부터 그 생명이 시작되었다

소악산 풍경김재준 作 (제1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입선)
인류의 집단무의식과 바다

바다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집단무의식을 표출한 신화와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대부분의 창세신화는 바다로 묘사되는 카오스(Chaos)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테튀우스는 대지의 신인 가이아(Gaia), 밤의 신 뉘크스(Nux)와 함께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포세이돈은 이들의 까마득한 후손이다. 대양(Ocean)의 어원인 ‘Oceanos’ 또한 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동양에도 태초에 바다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신화가 많이 있다. 인도 초기의 신 중 하나인 프리자파리는 태초에 바다에서 스스로 태어났으며, 자신의 몸에서 신과 악마 그리고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일본 신화에서는 혼돈의 바다에서 생겨난 최초의 존재인 구니토코다치에서 창조의 신 이라나기와 이자나미가 등장하며, 이 두 신이 창으로 바다를 휘저어 일본 열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집단으로 다니는 물고기

아울러 바다와 관련된 신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부분이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메르의 바다 신 'Nammu'는 하늘신 An과 대지신 Ki의 어머니이며, 그리스신화의 바다신 테튀우스와 잉카신화의 마마코차 역시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 인간이 바다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이처럼 원초적인 삶이 잉태되었던 생명의 발상지인 바다에 대한 향수가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의 속성
바다는 항상 낮은데 위치하며 흘러들어오는 모든 물 뿐만 아니라 온갖 쓰레기, 폐수 등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이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포용의 공간이자 열린공간이다. 인류는 바다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였으며, 끊임 없이 바다를 통해 미지의 세상에 도전했다. 우리 인류에게 바다는 새로운 세상과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기회이자 지름길인 것이다.
해양바다축제 한창현 作 (제7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수집)

해양민속과 설화

해양민속과 설화

민속과 설화는 민중의 삶과 애환 그리고 민족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신문화의 보고(寶庫)이다. 이러한 민속과 설화는 다수 민중의 시각에서 형상화된 기층문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해양설화는 바다에 대한 우리 민족의 원초적 관념을 엿 볼 수 있는 집단무의식이 표출 된 것으로 그 어떠한 사료(史料)나 고적(古跡) 보다도

해양정서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되며, 해양 신앙과 민속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 할 수 있다. 해양설화와 민속을 조사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해안가의 옛이야기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가진 정신문화의 원형을 찾아 복원함은 물론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해양민족으로서의 기지와 자긍심을 되찾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용왕제 박시옥 作(제6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동상)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역사로 본 해양활동

세계지도

서양의 역사에서 중심국 역할을 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강이나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서 출현하고 발전했으며, 이를 근거로 독일의 지리학자 칼 리터(Karl Ritter : 1779∼1859)는 인류 문명이 하천문명→내해문명→대양문명의 순으로 발전했다는 인류 문명의 변화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중해는 많은 반도와 섬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조류가 거의 없고, 기상조건이 비교적 좋기 때문에 육상교통보다 더 용이하고 신속한 해상교통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지중해는 일찍부터 문명의 전파, 무역, 해적, 해전 등의 무대가 되었으며, 그 결과 서양의 역사는 사실상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케네문명 모습
초기 문명

지중해 동부에 속하는 에게해의 크레타섬에서 발생하는 미노아 문명(기원전 2000∼1450)과 그리스의 미케네문명(기원전 1600∼1100)은 바다를 통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 이 두 문명은 일상용품과 곡식을 수입할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해상로의 주 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해상으로의 진출 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노스왕은 함대를 이용하여 해적을 일소한 후 수세 기 동안 해상질서를 유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인들은 동방과 서방을 잇는 무역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다. 나아가 에스파냐, 영국,에트루리라,발트해에 이르는 곳까지 해상무역 활동을 전개하여 해상 왕국을 건설하였다.

한편 중동의 페니키아는 지중해 연안에 상업도시들을 건설한 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이미 기원 전 1100∼750년에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700년에 상선과 군함을 구분하여 건조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해양력과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바이킹 시대

8세기에 유럽의 북부와 남부에서 또 다른 민족들이 해상의 강자로 출현하였다. 바이킹은 북해와 발트해 연안에서 8세기부터 상업활동을 하다가 영국과 세느강유역을 침공하고 지중해 동부 해역으로까지 진출하였다.

그들의 활발한 해상진출은 자신들의 전통선박인 바이킹 선을 갖고 서 해양 생물, 바다 색깔, 풍향, 밧줄에 의한 수심 측정술 등을 이 용하여 원양을 능숙하게 항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바이킹의 활동은 북부 유럽의 생산활동과 상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결국 도시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도시들 중 일부가 13세 기에 한자동맹을 체결하여 상거래를 독점했는데, 14세기에는 80여 개의 도시가 이 동맹에 참가했고 유럽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바이킹의 모습

한편 남부 유럽에서는 8세기부터 이슬람인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그들은 에스파냐를 정복했으며, 2차례에 걸친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승리하였다. 흔히 사라센제국으로 불리는 이 이슬람왕국은 10세기 초에 시칠리아와 크레타를 점령했으며, 이어서 아프리카 북부연안 전체를 점령하여 유럽인들의 해상활동을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피라미드
해양도시국가

중세 유럽 사회에서 해상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한 것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었다.

이때부터 대 동방 무역로가 페르시아에서 홍해와 이집트로 변경되었고, 선박을 보다 안전하고 저렴한 운송 수단을 인식하였으며, 선박 용량이 증가하였고 항구이용료가 저렴했으며, 나침반·해도 등 항해보조기술이 발전하였고, 남부 유럽의 해상항로 주변에 항구 도시가 발달하였다.

이들은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인들이 정주활동을 시작하는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 덕분에 도시 국가들은 해상 무역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이들 도시국가들에 의해 새로운 상업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을 개막한 르네상스는 바로 이 도시 국가들이 활발하게 해상 활동을 한 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대항해시대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서유럽에서도 서구의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대항해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항해는 지도와 해도의 제작술을 비롯한 지리학의 발달, 나침반의 전래, 항해 도구의 발달·항해 안내서의 발달·해양 관련 지식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항해술의 발전, 캐라벨과 같은 대항해용 선박의 발달 등과 같은 과학의 발전과 기독교의 선교 열망, 대담한 선원의 출현, 엔리케 같은 선구자들의 출현, 지중해 서부 지역의 인구 과잉, 경제 위기의 타개책 필요 등과 같은 인간 세계의 변화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베리아반도인들에 의해 14세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베리아인들의 이러한 해양 활동은 사그레스에 해양학교의 설립, 여러 항해가들의 15세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탐험, 16세기 전반기의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바다를 항해중인 선박

영국·프랑스·네덜란드는 16세기부터 대항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유럽 세계는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품종의 식물을 받아들여 주기적으로 나타나던 식량위기를 완화할 수 있었고 가격 혁명과 사회구조의 급변을 초래한 자본주의를 확립시켰으며, 노예제와 인도주의적 이상을 동시에 정립하였다.

대항해 시대는 세계 경제를 출범시키고 근대 산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던 시대이자 유럽의 팽창 시대였는데, 이것은 그 후 식민지 건설 경쟁이 전개되었다는 사실로 입증 될 수 있다.

세계지도(바르톨로뮤 디아스 희망봉 발견(1488년),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1492년), 바스쿠 다가마, 인도 항로 발견(1498년),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메리카라 명명(1502년), 마젤란, 세계 일주를 떠남(1519~1522년))
식민지 건설의 시대

식민지 제국은 토르데실라스 조약(1494년)의 체결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5∼16세기에 나타난 식민지 건설로 말미암아 금·은·향신료·밀·노예의 수요 증가와 국익의 상승을 통해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각 계층의 열망에 의해 식민지 건설의 움직임이 더욱 역동적인 사태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와 귀족층 사이의 경쟁이 유발되었으며, 선교·교육·구호 등으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16∼17세기에 이르자 이 식민지 건설 운동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로 확산되었다.

식민지 활동은 크고 많은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경제의 중심축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였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인들에게 주어졌으며, 농업 기술의 혁신과 교류가 전개되었고, 다양한 문화들의 상호교류도 이루어졌다.

실제로 1610∼40년에 유럽의 무역량이 10배로 증가했고, 또한 경쟁국들이 해상무역을 서로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18세기에 이르자 국제 해상무역의 선두자리가 영국에 돌아갔다.

산업혁명시대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발판으로 삼아 18세기 후반기부터 산업 혁명을 최초로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고 세계 제일의 부국이 되었다.

영국의 기술·상업·금융에 관한 정보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어 19세기에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추진되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철도망의 건설, 대서양 횡단 전신의 가설, 운하의 건설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공업 강대국 간의 균형이 파괴되고 그 대신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국의 경제적 패권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이 발전은 해양 활동의 수단을 발전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증기를 이용한 목조 외륜선이 등장했으며, 1832년 외륜기선이 증기기관만 사용하여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이어서 19세기 후반기에는 프로펠러 철선이 등장하였는데, 특히 1861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으로써 프로펠러 철선시대가 촉진되었다.

세계 지도 위에 망원경
자유의 여신상
태평양시대

20세기에 접어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강대국들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미국은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9세기 전반기까지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만 팽창 정책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는 마한의 해양전략론을 논거로 삼아 바다를 통한 대외 팽창으로 눈을 돌렸으며, 그 덕분에 미국의 사업가들은 시야를 해외 시장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극동 진출의 중간 지점으로서 하와이와 중남미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영토 확장 정책과 해군 확장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반면 17세기까지 강력한 강국으로 성장했던 러시아는 러시아는 크리미아전쟁(1853∼1856)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영국과 영국의 후원을 받은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해양강국으로의 도약 운동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욱 발전하며 초일류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선박 발달사

선박이 걸어온 발자취

(임진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인류의 조상들은 강이나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조개 등 어패류를 잡아먹으며 살았고, 고대문명 역시 4대강 유역의 발상지를 비롯하여 대부분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 발전하였다. 따라서 강과 바다를 이용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박이 발달해 온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달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대부터 현재까지 세계를 제패했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바다를 지배함으로써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스, 로마, 페니키아인은 지중해에서, 중세의 노르만족은 북해에서 근세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오대양을 지배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번영을 누렸다.

또, 영국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바다의 지배권을 획득함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였고, 20세기 초 일본도 노일전쟁에서 당시 막강 전력의 러시아함대를 격파하면서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패배한 것도 미국의 해군력을 과소 평가한 결 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의 흥망성쇠는 제해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제해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연히 선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선박의 발달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으로 그린 선박 바다를 항해중인 선박
10세기 이전의 선박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큰 강을 끼고 있어 일찍부터 주운(舟運)이 발달했다. 특히 이집ㅇ트는 나일강을 이용한 주운이 발달했는데, 기원전 2500년 경의 벽화에도 돛과 노를 이용한 선박의 그림이 생생히 그려져 있어 조선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이용한 주운이 발달한 것에 비하여, 페니키아는 지중해를 항해하는데 알맞은 선박을 건조하여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페니키아에서는 군선도 발달하였는데, 페니키아의 군선은 후에 그리스 갤리선의 모형이 되었다.

그리스의 갤리선은 선수가 뾰족하고, 선미는 꼬리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 단의 노를 갖추고 있었다. 3단 갤리선의 경우 노를 젓는 인부가 170명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이집트의 목조범선 펠루카
그리스의 갤리선

해양탐사와 탐험

해양 탐사의 기틀을 마련한 모리

인류 해양탐사의 과학적 기초를 수립한 것은 미국의 해군 대령 매튜 모리(1806~1872년)로 그는 50만 개나 되는 바람과 해류에 관한 관측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모리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해군 제독이 되기를 꿈꿨으나 1839년 마차 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후 함정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자 해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 1847년에 대서양의 풍향, 풍속과 해류의 흐름을 담은 항적도를 펴냈으며, 당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증기기관선들에 의해 바다에서 충돌하는 사고로 엄청난 보험료를 물어야 했던 보험사들이 모리의 해류 덕분에 보험금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고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모리는 1853년 브뤼셀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해양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가해 증기선과 범선이 다닐 수 있는 뱃길을 처음으로 제시, 충돌사고를 줄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한 최초의 근대적 해양학 교과서인 ‘바다의 자연, 지리학’을 발간(1855년)하고 대서양 해저케이블의 가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극항로 개척시대

두꺼운 얼음 때문에 항해하기 어려웠던 북극항로가 최근들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였고, 쇄빙선들이 얼음을 뚫고 가면 상선들이 뒤따라 갈 수 있게 된 까닭에 이제는 북극을 연중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해빙된 북극 수역에서는 세계 각국의 항로개척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미 독일, 노르웨이, 러시아 등은 상업 운항에 성공했다. 북극을 지날 수 없었던 예전에는 남방항로를 이용하여 선박을 운항하였는데, 이 남방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운항거리가 22,000km로 운항기간이 40일이나 걸렸다.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되면 거리가 15,000km로 줄고, 운항기간도 30일 소요되어 운항거리와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로 북극을 항해하는 등 북극항로 개척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바다의 고고학

바다속 가라앉은 선박
세계지도 및 고대 유물

수중고고학은 과거 물속에 잠긴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하여, 인류의 문화 생활 방식과 역사 등을 밝혀내는 학문이다. 따라서 모든 활동이 바다나 하천 등의 물 밑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조사환경과 방법적인 면에서 육상고고학과는 구분된다.

수중고고학은 근래들어 학문의 영역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조사가 수행된 장소나 방법, 대상 연구결과에 따라 underwater, maritime, marine, deepwater, submarine, nautical, ship archaeology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점차 수중고고학(underwater archaeology)이라는 용어로 통일되고 있다.

수중유물의 발견

수중 유물은 수상 활동 중 선박 등의 침몰에 의해 남아 있게 되는 경우와 지질학적인 변동이나 기후의 변동으로 물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카리브해안 자메이카의 포트로얄 유적과 리비아의 아폴로니아를 들 수 있다.

바다 속에서 발견되는 고대 침몰 선박들은 비산소 층에서 진공상태로 온전히 보존되기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침몰 당시의 모습을 거의 온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수중 발굴 유물로는 2005년 9월,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8천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통나무 배가 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선박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해양력과 국가발전

해양력이란 무엇인가?

해양력이라는 용어가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890년 마한(Alfred T. Mahan, 1840~1914)이 미 해군대학교에 재직 중 "역사에 미친 해양력의 영향(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이라는 저서를 저술하면서 부터다. 마한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 ‘해양력이 역사의 진로와 국가의 번영에 훌륭한 영향을 미쳤으며 해양력의 역사는 해양에서 또는 해양에 의해서 국민을 위대해지게 하는 모든 것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라고 주장함으로써 해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마한은 해양력이란 용어를 바다 자체가 어떤 힘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Maritime이라는 형용사 대신 Sea Power라는 복합 명사를 사용한다고도 하였다.

바다에서 항해주는 배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해양력이란 군사적 형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국가발전에 필요한 국력의 한 부분이라는 개념이다. 그리고 해양력의 일관된 개념이 해양의 사용(use)과 통제(control)라는 점이다. 따라서 해양의 사용과 통제 역시 단순히 군사적 목적만을 위하여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발전 즉 국가이익과 국가목표 그리고 국가정책에 기여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김택수 作(제3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금상)
수출선적부두

김택수 作
(제3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금상)

우리의 해양력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멀리하고 살아온 까닭에 해앙진출이 늦었고 그 만큼 역사의 변방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는 1960년대 이후 해양지향적 경제개발을 통하여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거두어 이제는 해양강국이 되었다.

바다는 우리에게 생명선과 같은 존재이다. 남북분단으로 사실상 섬나라가 되어버린 우리가 세계와 교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출입 물동량은 99%가 바다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수입하는 식량과 석유 철강석 등 기간산업 원자재의 대부분이 바다를 통해 수입되어지고 있다.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해양력은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되는데 선박건조 세계 1위, 선복량 세계 6위, 컨테이너선대 세계 7위, 해양수출입 몰동량 세계 6위, 수산물 생산량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단기간에 이룬 놀라운 해양력의 이면에는 3면이 바다라는 입지적 요인과 해양국가로서 우리 국민의 DNA에 흐르는 뛰어난 해양적응력도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무역항

박권수 作
(제1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동상)

박권수 作 (제1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동상)
조선업이 발달되어 있는 항구

특히 동북아지역은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으로 경제성장이 빨라 북미와 유럽에 버금가는 경제권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화경제권으로서 세계 3위의 GDP에 이미 미국을 넘어 세계 1위의 교역국으로 성장하였다. 동북아시아는 21세기 경제성장의 핵심적인 엔진이며 동북아지역이 북미 NAFTA나 유럽 EU처럼 경제블럭을 형성한다면 인구나 경제규모 등에서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해양경쟁력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관문에 해당하는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대륙의 장점과 해양의 이점을 한꺼번에 살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한반도이다. 한반도는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교두보이며, 육지에서 보면 바다로 나가는 시발점으로 대륙으로는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연결되고 바다로는 세계 어디fh든지 무한정 뻗어 날 수 있는 지리적, 경제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남동쪽에는 세계 제2의 경제, 기술 부국인 일본이 서쪽에는 세계의 공장이자 최대 잠재시장으로 또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북쪽에는 21세기 에너지 강국으로 부활한 러시아가 있다.

그 한 가운데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경제 요충지이다.

정희준 作 (제7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은상)
이어도 경비

정희준 作
(제7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은상)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바다를 개척할 여지는 무궁무진하게 열려있으며, 아직 우리의 해양력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영해와 대륙붕 개발 가능성은 무한하며, 항만, 관광산업 입지로써 조건을 두루 갖춘 해안지역과 도서지역도 잠재력이 큰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는 결코 대륙국이 아니고 해양국이며, 우리의 역사도 바다로 나아갔을 때 번창했고 내륙으로 쏠릴 때 쇠퇴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천혜의 해양 여건을 살려 개방된 무역국으로, 그리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매력 있는 나라로 가꾸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의 문화와 경제를 주도하는 초일류 선진국가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 본 원고는 한국해양재단이 추진한 "해양교육교재 개발" 및 "해양교육 교과관련 콘텐츠 개발" 사업의 성과물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