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해양교육의 장

해양영토란?

물고기떼 안에 잠수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

바다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사회가 치열한 해양영토 확보 경쟁을 벌이는 ‘신 해양 시대’가 열렸다. 세계 각국이 더 넓은 바다로의 진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 치의 해양영토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충돌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국제 사회는 해양영토 확보 경쟁에 따른 국가 간 정치적 · 물리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국제 연합 (UN) 해양법 협약을 채택하는 등 해양 질서를 유지하고자 힘쓰고 있다.

신 해양 시대

오랫동안 바다는 육지와 달리 소유권을 정해둘 필요가 없는 공동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육지의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고 수산 식량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국가가 바다를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최근 ‘해양영토’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바다 위에 어선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해양영토의 정의

해양영토란 좁게는 한 국가의 영토 주권이 미치는 관할 해역으로서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 그리고 대륙붕 수역을 의미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관할 해역을 넘어 개별 국가가 독점적 탐사와 개발권을 확보한 심해저 및 과학기지를 운영 중인 극지를 포함한 지역 또한 넓은 의미의 해양영토로 정의할 수 있다.
※ 영토, 영해 : 한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 영토는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육지와 섬을 말한다. 영해는 주권이 미치는 영토 주변을 둘러싼 바다이다.

바다 위 섬의 모습
해양영토의 범위

해양영토의 범위는 ‘기선’이라고 하는 가상의 선으로부터 결정된다. 기선을 기준으로 안쪽에는 내수가 있고 바깥쪽에는 영해,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대륙붕 수역이 존재한다.

영해는 육지와 동등한 주권이 미치는 공간으로, 기선부터 12해리까지의 바다를 말하며 기선부터 24해리까지 영해의 바깥쪽 바다는 접속 수역에 해당한다.

바다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으로 최근 그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된 배타적 경제 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은 기선으로부터 최대 200해리까지 설정할 수 있는 수역이다.

대륙붕 수역은 육지 영토의 자연적 연장이 기선부터 200해리 미만인 경우 200해리, 200해리를 넘는 경우 최대 350해리까지 설정되는 수역이다.

※ 해리 : 항해, 항공 등에서 사용되는 길이의 단위이다. 1해리는 지구의 위도 1분(1')의 평균 길이로 1,852m에 해당한다.

※ 기선 : 기선은 통상 기선과 직선 기선으로 구분된다. 통상 기선은 해안선이 단조로운 곳에 적용되며 최저 간조선이 기준이다. 직선 기선은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섬이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가장 외곽에 자리한 섬과 섬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이다.

육지(통산 기선) + 바다 + 육지(직선바다)
해양영토의 중요성

과학 기술의 발달로 해양 개발이 보다 용이해지고 바다가 지닌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속속 밝혀짐에 따라 해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뜨거워졌다. 세계 각국은 배타적 경제 수역과 대륙붕 수역의 연장을 주장하고 있으나 많은 수역이 중첩되기 때문에 해양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단 자국 해역뿐만 아니라 심해저, 극지 등 주인 없는 해양영토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 또한 과열되고 있다. 특히 남극에서는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이 대립하고 있으며, 더 많은 국가들이 남극 영유권 주장에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 또한 관할 해역을 더욱 굳건히 지키고 더 넓은 바다로 뻗어나가 새로운 해양영토 개척을 위해 힘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해양경계

영공 = 영토 + 영해(12해리) / 기선 위치
영해

영해는 영토나 영공과 마찬가지로 연안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 관할 구역이다. 주권이 미치는 해양 공간은 크게 영해,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대륙붕으로 구분되는데, 연안국은 영해에서의 해상 안전과 질서를 국내법으로 통제할 수 있으며, 외국 선박이 영해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국내법을 근거로 나포하거나 처벌할 수 있다. 그리고 연안국은 영해에서 외국 선박이 폐기물을 투기하거나 해양 오염을 야기할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해양 과학 조사를 위한 배타적 권리를 갖는다.

영해의 수역 범위는 국가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우리나라는 영해 및 접속 수역법에 의해 기선으로부터 12해리까지의 해역을 영해로 설정하고 있다. 대한 해협은 일본과의 협소한 거리를 고려하여 3해리로 설정되었다.

기선은 어떻게 정해지나?

영해의 기준이 되는 선은 썰물 때의 해안선(통상 기선)이 원칙이지만,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연안에 섬이 많을 경우, 외해로 돌출한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직선 기선)을 기선으로 한다. 그리고 군도 기선은 군도로 이루어진 섬나라에서 적용되는데, 이는 군도의 제일 바깥쪽 섬들을 연결한 직선 기선이다. 이러한 기선으로부터 바깥쪽 12해리까지가 영해이다.

우리나라의 영해는 동해의 경우, 해안으로부터 12해리로 설정되어 있고, 남해와 황해에서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섬(기점)을 연결한 선을 기준으로 영해가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 울릉도, 독도와 같은 섬들의 경우는 각 섬의 해안으로부터 12해리를 영해로 설정하고 있다. 다만, 대한 해협의 경우는 양국 간 해협의 폭이 좁아 3해리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바다의 경계를 나눌 때 가장 우선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로 영해 기점과 기선이다.

※ 기선 : 기선은 영해의 바깥쪽 경계(범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선이다. 기선은 영해뿐만 아니라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대륙붕의 한계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기선의 종류는 통상 기선, 직선 기선, 군도 기선이 있다.

1.만의 경우(만 사이에 튀어나온 육지와 만 바깥쪽 육지와 직선으로 연결한 선을 기선으로 한다.)
2.하구의 경우(육지에서 외해로 돌출한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을 기선으로 한다.)
3.섬이 있는 경우(육지에서 외해로 돌출한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을 기선으로 한다.)
4.굴곡 해안의 경우(육지에서 외해로 돌출한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을 기선으로 한다.)
접속수역

접속 수역은 영해와 같이 배타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영해 바깥쪽으로 이어지는 일정 범위(기선으로부터 최대 24해리)의 수역으로서 연안국이 자국의 권익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설정할 수 있는 해양 공간이다. 연안국은 접속 수역에서 관세, 재정, 출입국 관리, 보건, 범죄 등과 관련하여 외국 선박들에 대한 감시 등 제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접속 수역은 본래 18세기에 영국에서 시행되었던 배회법(Hovering Act)으로부터 기원한다. 이 법은 공해 자유 원칙의 예외로서 영국의 영해 외곽을 배회하면서 밀수를 행하던 외국 선박을 단속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었다. 영국은 이 법에 근거하여 관세를 효과적으로 부과하고자 영해에 인접한 일정한 범위의 수역에 한하여 관세 통제권을 행사하였다.

미국에서는 독립 초기였던 18세기 후반, 밀수와 노예 무역을 억제하고자 영국에서와 비슷한 관할권을 행사하였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접속 수역을 설정함에 따라 이러한 관행은 점차 관습법으로 정착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이미 접속 수역에 대한 법적 개념이 확립되었다.

배타적 경제 수역이나 대륙붕과 같은 개념들이 등장함에 따라 전통적인 접속 수역 설정의 필요성은 감소하고 있다. 배타적 경제 수역과 대륙붕이 연안국의 경제적 관할권의 측면에서 다루어진다면 접속 수역은 연안국의 관세, 출입국 관리, 보건 등에 관한 조치를 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영공= 영토 + 영해(12해리))(기선 바깥쪽으로 12해리는 영해)(영해 바깥쪽으로 12해리는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각국은 자국의 영토로부터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할 수 있으며, 이 수역 안에서는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배타적 경제 수역은 외국 선박의 운항, 통신의 자유 보장, 외국 항공기의 상공 비행의 자유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사실상의 영토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각국에서는 배타적 경제 수역을 주권적 차원에서 관할하고 있다.

배타적 경제 수역은 국제 연합 해양법 협약에 의해 규정된다. 이 협약에 의해 영해가 기존의 3해리에서 12해리로 늘어났으며, 배타적 경제 수역이 200해리 까지 인정됨에 따라 한 국가가 관할할 수 있는 바다의 영역이 과거에 비해 확연히 넓어졌다. 결국, 전체 바다 면적의 1/3 이상이 배타적 경제 수역에 포함되었다.

관련국 사이에 끼인 수역의 범위가 200해리(배타적 경제 수역의 범위)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관련국들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배타적 경제 수역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이들 국가에 인접한 해역은 상대적으로 협소하여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국들은 서로 자국의 주권적 이익을 확보하려고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는 항상 존재한다. 이에 따라 이들 3국은 별도의 협정을 통해 상호 간에 분쟁을 해소하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영공= 영토 + 영해(12해리))(기선 바깥쪽으로 12해리는 영해)(영해 바깥쪽으로 12해리는 접속수역)(200해리=영해 + 배타적 경제 수역)(배타적 경제 수역 = 200해리 - 영해(12해리))()
대륙붕

대륙붕은 연안국의 땅덩어리가 해면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부분으로서, 1945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대륙붕 선언’을 했던 것이 사실상 국제 사회에서 처음으로 대륙붕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사례이다. 즉, 당시 연안국들이 대륙붕에 존재하는 풍부한 생물 자원 및 비생물 자원에 대한 권한을 주장함으로써 대륙붕이 국제법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1958년에 있었던 대륙붕에 관한 협약은 영해 외의 해저에서 수심 200 m까지의 해저 또는 그 이상의 심해라 하더라도 천연자원에 대한 개발이 던 북해 대륙붕 사건에서 대륙붕은 영토의 자연 연장이라는 국제 사법 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1982년 해양법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에서는 대륙붕을 200해리의 거리 기준과 해저의 형상을 조합하여 오늘날의 국제법상 제도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 수역과의 관계, 그리고 대륙붕의 경계 획정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일부 대륙붕에 한해 협정을 체결하였지만, 중국과는 아직 획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접속 수역부터 대륙 사면의 끝을 기준으로 최대 60해리까지가 국제 연합 해양법 협약상 대륙붕의 한계

우리나라의 해양영토

바다위의 섬
어디까지가 우리 바다일까?

우리나라의 관할 해역은 기선으로부터 설정된 영해와 접속 수역 그리고 배타적 경제 수역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관할 해역의 총면적은 443,838 km2이며, 이는 남한 면적(100,210 km2)의 약 4.4배에 이르는 광활한 범위이다. 동해, 남해, 황해의 관할 해역 면적을 비교해 보면 황해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 하고 있으며 이어서 남해와 동해 순이다. 일반적으로 관할 해역에는 대륙붕 수역도 포함되지만 우리나라는 주변국과의 거리가 가까워 대륙붕 수역 설정이 어렵다. 또한 배타적 경제 수역도 상당부분 중국 및 일본 측 배타적 경제 수역과 겹쳐 한일 중간 수역과 한중 잠정 조치 수역을 설정해 둔 상태이다.

동해, 남해, 황해 관할 해역의 지리적 구분
동해, 남해, 황해 관할 해역의
지리적 구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해, 남해, 황해의 경계는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동쪽, 남쪽, 서쪽으로만 구분할 뿐 그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행정적으로 아직까지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립해양조사원에서 업무의 통일성을 위해 설정한 해양 경계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팔각정(해월정)의 전경
사자봉 땅끝 탑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동해 관할 해역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의 달맞이 고개 정상에 위치한 팔각정(해월정)에서 정북을 기준으로 135°로 그은 동해 - 남해 구분선에서부터 동해 북방 한계선까지이다.

남해 관할 해역은 동해 - 남해 구분선에서부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산 사자봉 땅끝 탑에서 정북을 기준으로 225°로 그은 황해 - 남해 구분선 사이이며, 황해 관할 해역은 황해 - 남해 구분선에서 서해 북방 한계선까지이다.

우리나라의 바다 황해 *면적:약 191,449km2 -서울 면적약 605km2의 약 316배 *평균 수심: 약 51m *최대 수심: 약 124m(가거도 남동쪽 약 60km) 동해 *면적:약 120,447km2 -서울 면적(약 605km2)의 약 199배 *평균 수심: 약 1,497m *최대 수심: 약 2,985m(ㅅ우산해곡 최북측 부근) 남해 *면접: 약 131,942km2 -서울 면적(약 605km2)의 약 218배 *평균 수심: 약71m *최대 수심:약 198m(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국토지리정보원, 국립해양조사원, 2013년)* 각 해역의 수치는 국립해양조사원의 해양과학정보주제도에 따른 남한 측 관할 해역의 자료임.

한일・한중 어업 협정

한일 어업 협정과 해양 경계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대한 해협처럼 바다의 폭이 넓지 않은 경우 양국 간의 해양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간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당사국은 어업 협정과 같은 또 다른 방식으로 해양 경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한일 간의 어업 협정이 1965년 6월에 체결되었지만, 1996년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된 후, 1998년 11월에 두 번째 어업 협정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어업 협정 이후, 어떤 배경에서 두 번째 어업 협정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해양 경계의 관점에서 두 번째 어업 협정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어업 협정 이후, 1977년 미국과 구소련이 어업 보존 수역으로 200해리를 선포하자 일본도 같은 해에 자국의 연안으로부터 200해리의 모든 자원에 대해

어업을 하고 있는 어선들의 모습

독점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선포하면서 ‘트롤 어선 조업 금지 라인’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선포한 배타적 경제 수역과 중첩되어 양국 간의 어업 분쟁이 격화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이 체결되었다.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은 한일 간의 배타적 경제 수역의 설정과 동해 해상 및 제주도 남쪽 해상의 중간 수역 설정, 불법 조업 단속 및 어업 공동 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한일 양국은 35해리를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정하고 상대국의 기존 어업 실적을 고려하여 1999년에는 우리나라가 약 15만 톤, 일본이 약 10만 톤에 한하여 상호 입어를 허용하되, 3년이 지나면 동등한 양으로 조정하기로 했다(2002년 : 8만 톤, 2003년 ~ 2007년 : 6만 5백 톤, 2008년 이후 : 6만 톤). 한편, 1999년 발효된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 제12조 및 부속서 Ⅰ에 따라 한 · 일 중간 수역에서타 국민 및 어선에 대해 어업에 관한 자국의 관계 법령을 적용하지 않으며, 각국은 이 수역에서 자국 국민과 어선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조치를 타국에 통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독도는 중간 수역 안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이므로 독도를 중심으로 한 영해 12해리는 타국 어선의 조업이 불가능하다.

※ 트롤 어업(trawl fishery) : 끌그물 어구를 해저에서 끌어서 해저에 사는 어류를 잡는 방식의 어업 방식이다.

어선에서 잡은 물고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
한중 어업 협정과 해양 경계

우리나라와 중국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양국은 어업 문제에 관해서는 공식적인 협상이나 특별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중국의 모택동 라인(1950년)이나 우리나라의 이승만 라인(1952년)이 각각 선포되었을 때에도 각국에서는 이에 대해 상호 인정하지 않았다. 황해를 사이에 둔 양국 간의 어업 변천사를 보면, 1980년대 초까지는 우리 어선이 중국의 연안에 더 많이 출어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더 많은 중국의 어선이 우리측 수역에서 조업하였으며, 조업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어족 자원의 고갈 문제와 우리 어민들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한편, 한중 양국의 수교 이전부터 황해 어업에 대한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89년 우리나라의 수산업 협동조합 중앙회와 중국의 동·황해 어업 협회 간에 「어선 해상 사고 처리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는데, 이는 한중 양국 어선의 긴급 피난 및 안전 조업과 해상 사고 처리에 관한 민간 협정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2년에 수교한 이래, 정부 간 어업 협정 체결을 위한 실무 회담을 시작하여 2000년에 이르러 「한중 어업 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되었다. 협상이 길어진 이유는 국제 연합 해양법이 인정하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 수역의 관점에서 볼 때 양국 간에 공유하는 황해의 폭이 최대 280해리에 불과하여 양측 간에 수역의 경계를 획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국 간에 체결된 어업 협정의 전문을 보면, 협정의 기본 이념과 목적으로서 해양 생물 자원의 보존과 합리적 이용, 정상적인 어업 질서 유지, 어업 분야에 있어서 상호 협력 강화 등 세 가지 항목이 명시되었다.

한중 어업 협정의 주된 내용은 첫째, 잠정 조치 수역의 설정(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해양 생물 자원 보존을 위해 어선수를 제한하는 등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수역), 둘째, 과도 수역의 설정(4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편입),

한 중 잠정조치 수역, 한일 중간 수역 영역 표시되어있는 지도

셋째, 구조 및 긴급 피난시 상호 협조, 넷째, 어업 공동 위원회 설치이다. 한중 어업 협정의 결과, 중국은 우리측 근해에서의 조업이 제한을 받게 되었으며, 우리 역시 황금 어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양쯔 강 수역에서 조업을 못하게 되었다. 비록 양국 어민들의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동중국해 어장의 수산 자원을 보존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독도

독도의 모습
독도의 위치로 울릉도에서 남동 방향으로 87.4 km 떨어진 곳,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과 직선거리는 216.8 km, 죽변에서 울릉도까지 130.3km, 독도에서 가장 근접한 일본 영토는 시마네 현 오키 섬으로 울릉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157.5 km 거리에 위치한 섬
독도의 지리적 특성

우리 국토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동도와 서도 및 89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동도와 서도 및 부속 도서를 포함한 면적은 187,554 m2이다. 서도(168.5 m, 88,740 m2)가 동도(98.6 m, 73,297 m2)보다 해발 고도가 높고 면적도 넓지만 각종 시설은 경사가 완만한 동도에 주로 입지해 있다.

독도는 가장 가까운 섬인 울릉도에서 남동 방향으로 87.4 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육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으로 직선거리는 216.8 km이다. 한편 독도에서 가장 근접한 일본 영토는 시마네 현 오키 섬으로 울릉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157.5 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맑은 날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맨눈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오키 섬에서는 독도를 볼 수 없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다.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해양의 역할과 위상이 커진 오늘날 더욱 중요시되고 있으며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에게도 독도는 군사적 · 안보적 측면에서 중요한 섬으로 인식되고 있다. 독도 주변 해역은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처이자 풍요로운 어장이며, 부근의 해저에는 메탄하이드레이트와 같은 차세대 에너지 자원이 상당량 매장되어 있어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메탄하이드레이트의 분포 지역은 석유 매장 가능성 또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최근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태극기와 독도의 모습
독도의 지형과 기후

독도는 해저 2,000 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약 460만년 전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독도의 해수면 아래에는 매우 큰 해산이 독도를 떠받치고 있다. 동도의 정상은 비교적 평탄한 반면, 서도는 정상이 뾰족한 원뿔의 형태를 보인다. 해안은 대부분 가파른 해식애를 이루고 있으며, 해식애 곳곳의 암벽면에는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파인 타포니가 매우 잘 발달해 있다. 서도의 북쪽 해안에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 용출되는 샘인 물골이 있어 하루 약 400리터의 식수를 얻을 수 있다. 물골은 해수 담수화 시설이 설치되기 전까지 독도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독도는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12℃이며, 1월 평균 기온은 1℃로 비교적 온난하다. 연평균 풍속은 4.3 m/s로 여름에는 남서풍, 겨울에는 북동풍이 우세하다. 안개가 잦아 연중 흐린날이 160일 이상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240 mm이며 울릉도와 함께 겨울철 강설량이 많은 다설지에 속한다.

※ 해산 : 해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해저로부터 높이가 1,000 m 이상인 해저의 산을 말한다. 수중에 잠겨 있고 가파르며 고립적으로 솟아 있다.
※ 타포니 : 암석을 이루는 입자들이 화학적 또는 물리적 영향으로 부서져 암석 표면에 크고 작은 구멍 형태로 형성된 풍화 지역이다.

독도의 동물과 식물

우리 땅 독도에 아름다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생물들은 주로 작은 꽃과 나무 그리고 새와 곤충들이다. 독도는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내내 소박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많다. 갯장대(봄), 땅채송화와 갯제비쑥(여름) 그리고 해국(가을)은 독도의 계절을 대표하는 꽃들이다. 토층이 얇아 뿌리를 내리기 힘든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섬괴불나무, 줄사철, 동백나무, 곰솔(해송) 등의 나무도 자라고 있다. 풀과 나무는 새와 곤충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독도에는 텃새뿐만 아니라 많은 철새와 나그네새가 기착하여 살고 있다.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는 독도를 번식지로 삼아 살고 있으며 매와 말똥가리 그리고 흑비둘기와 같은 천연기념물도 발견된다. 흰띠명나방, 자바꽃등에, 작은멋쟁이나비 등의 곤충은 우리가 독도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특히 독도는 많은 곤충의 생물 지리적 한계선 역할을 하고 있어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독도와 새들의 모습
화창한 날 독도의 모습
역사 속 우리의 독도

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면서부터 이미 우리 땅이었다. 조선 시대의 문헌에도 독도는 조선 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우산(독도), 무릉(울릉도)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고 기록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명기하고 있다. 1693년(숙종 19년) 안용복은 일본 어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하여 고기를 잡자 동료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 및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고 에도막부가 이를 인정한 서계를 받았다.

일본 메이지 정부도 1877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인정하였다. 당해 3월 일본 최고 행정 기관이었던 태정관은 지령을 내려 ‘울릉도 외 일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으므로 일본 지적에 포함시키지 말라’라고 내무성에 지시하였다. 대한 제국 또한 1900년(광무 4년)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도군(울릉군) 관할 구역에 석도(石島: 독도)를 포함시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명확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동해상에서 러일 전쟁(1904~1905년)을 치르면서 동해와 독도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여 1905년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시켰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았다. 독도 또한 1943년 카이로 선언과 1945년 포츠담 회담을 통해 국제 사회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1946년에 제작된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제677호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우리나라의 행정 관할 구역으로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어 전쟁에 승리한 연합국이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독도는 유구한 역사 동안 수많은 호국 선열들이 지켜낸 소중한 우리 영토로서 우리 국민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의 경찰과 해군이 지키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일부이다.

독도는우리땅-김정순 作(제6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은상)
독도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
독도를 지키기

일본 정부는 1954년부터 독도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여 해결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임이 분명하며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도발에

위한 우리의 노력

단호히 대응하면서 독도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독도와 독도 주변 해역의 이용과 보전ㆍ관리 및 생태계 보호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국토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비단 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독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소중한 우리 국토인 독도를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도 등대의 모습
독도의 주민

故 최종덕씨가 1965년 3월부터 최초 거주한 이래, 현재 婦김신열씨(夫김성도씨 2018년10월 별세), 독도경비대원 25명, 등대관리원 3명, 울릉군청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 등 약 40명 거주 중(2021년 4월 기준) 출처 : 외교부 독도

독도의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 이사부길(동도), 독도안용복길(서도) 이다.

독도에 있는 비석
독도 경비대의 모습
독도 경비대

독도 경비대는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으로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 임무를 담당한다.

독도지킴이-김휴정 作(제7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동상)

이어도

전설의 섬, 이어도

제주도의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섬이자 거친 바다를 토대로 고된 삶을 살아온 제주민들의 애환이 녹아든 피안의 섬이었던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 호가 이 지역을 지나던 중 암초에 부딪히면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이어도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1987년 해운항만청에서 이어도 부근에 등부표(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위험을 알리는 항로 표시)를 설치하면서부터이다. 당시의 구조물은 이어도에 설치된 최초의 구조물인 동시에 국제 사회에 최초로 이어도의 명칭을 공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실 이어도는 그동안 상상의 섬이었기에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3년 국내 최초의 종합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되면서 전설 속의 섬 이어도는 실재하는 과학의 섬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동중국해 자원과 해양주권 확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바다 속 이어도의 모습

이어도는 수중 암초로서 마라도에서 남서쪽으로 149 km 떨어져 있으며 가장 얕은 곳이 해수면 아래 약 4.6 m에 존재한다. 수심 40 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 m, 동서로 약 750 m에 면적은 약 0.38 km2이다. 암초의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형상이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의

역할과 기대

종합해양과학기지는 해양에 관한 종합적인 관측을 위해 다양한 장비를 설치하여 장기간 운영하는 고정 관측 시설을 말한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무인 자동화로 운영되고 있으며 연구와 시설 유지 · 보수 등을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50일 이상 국립해양조사원 직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체류하기도 한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해에 설치되어 지진 해일 및 태풍의 경로 예측, 기후 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 해양 환경 변화 등의 장기적 모니터링을 수행할 수 있다. 동시에 해양 · 기상 · 환경 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측을 통해 해양 예보, 재해 대응, 환경 평가, 해양 이용 등에 필요한 자료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 대륙붕 수역 자원 탐사를 위한 전진 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며 우리 군의 작전과 해양 레저, 해양 산업 등에 필요한 실시간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해양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서 큰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이어도 경비-정희준 作(제7회 대한민국해양사진대전 은상)
이어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수역을 놓고 우리나라와 중국은 해당 수역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어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입장은 어떠하며, 이어도가 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배타적 경제 수역이 중첩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6년부터 해양 경계 획정을 위한 회담을 해오고 있다. 2008년 11월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회담이 진행되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황해상의 ‘중간선(median line)’이 양국 해양의 경계 획정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형평성 있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여기는 반면, 중국의 입장은 해안선 길이나 배후 인구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서쪽 연안에 가깝게 그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어도는 배타적 경제 수역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주장 배타적 경제 수역, 중국 주장 배타적 경제 수역, 영영표시와 그 중간에 있는 이어도와 서산다오의 거리는 287km, 이어도와 제주도의 거리는 149km, 이어도와 도리사마의 거리는 276km이다. 이어도와 한중 배타적 경제 수역

중국의 입장은 이 섬이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이 중첩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해역에서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이어도 해역에 대한 실효 지배와 선점을 무시하려는 것으로, 우리 정부는 우리측 배타적 경제 수역에 더 가까이 위치한 이어도에 해양 과학 기지를 건설하고 활용하는 것은 국제 연합 해양법 협약에 근거한 관할권 사용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왔다.

이어도 주변 해역은 1952년의 ‘평화선’ 선포, 1970년 해저 광물 자원 개발법(이어도 해역을 제4광구로 지정) 제정 등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 중인 곳이며, 향후 중간선 원칙에 따라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게 되는 경우에 이어도는 우리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위치하게 될 것임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이용과 관리를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