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요일은 바다톡톡, 오늘 강의를 맡은 공주대 역사교육과 문경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배와 뱃길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짐을 옮겨야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제일 먼저 철도나 자동차 같은 것들을 떠올릴 텐데요. 불과 150년 전 사람들은 길을 떠나거나 짐을 옮길 때 철도나 자동차가 아니라 배를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레였고요. 그렇다면 그 시기 사람들이 그렇게 배를 많이 이용했던 이유는 무엇일지 그 다음에 그 시기 사람들이 사용했던 배는 어떤 것들이었을지 차례대로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에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이라고 하는 사람이 남긴 고려도경에 나와 있는 글귀입니다. 뭐라고 되어 있냐면 고려 시대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고 자라서 고래 같은 파도를 늘 타게 되니 집을 나설 때, 의당 선박을 앞세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동차를 타지만 고려 시대 사람들은 배를 탔다는 거죠. 이거는 조선시대 기록인데요. 수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지방이 흡사 자동차 바퀴처럼 혹은 자전거 바퀴처럼 구성이 되어있어서 모든 물자를 실어서 서울로 옮긴다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기록들만 봐도 당시 사람들이 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죠. 이런 것들에 착안해서 오늘 여러분은 저하고 네 가지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겁니다. 일단 첫 번째는 배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배무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게 사투리일까 아니면 한자어일까 궁금할텐데요. 배무이가 어떤 뜻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조선시대 배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배를 타본 적이 있을 겁니다. 여객선이나 아니면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선을 본 적이 있을 텐데 조선시대 배는 그것하고 또 달랐거든요. 어떤 형태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다음 세 번째는 뱃길과 항해술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나침반을 보고 모터를 이용해서 배가 움직이는데 조선시대엔 당연히 그런 것들이 없었을 때죠. 그렇다면 배들이 어떻게 움직였을지 그 다음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고갔을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지금도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게 침몰이나 조난입니다. 당시에도 예외는 아니었거든요. 어느 지점이 주로 침몰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점이었는지 그 다음에 그럴 경우에 또 어떻게 사람들을 구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배무이에 관한 것입니다. 배무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배를 만드는 말의 북한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북한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배를 만든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지금도 배를 짓는 사람들은 배를 만든다 혹은 배를 짓는다라는 말도 쓰지만 배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오늘 배무이라는 말을 좀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당시 사람들이 만든 배입니다. 1800년대 즈음에 광나루에서 아차산성을 향해서 가는 배를 찍은 건데요. 하얀 돛을 단 배 한 척이 지금 아차산성 쪽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어떤 배는 돛이 두 개이고 어떤 배는 돛이 하나인데요. 그건 또 나름대로 차이가 있습니다. 돛이 하나짜리는 주로 강을 오가는 배고 돛이 두 개짜리 배는 바다를 오가는 배입니다. 이 배는 지금 돛이 하나죠? 그러니까 한강을 왔다갔다거리면서 아마도 물건을 싣거나 사람들을 운송했을 배였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배를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자료를 보면 아마 이해가 될 겁니다. 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옮길 수 있는 짐의 무게를 1이라고 한다면 말을 이용해서 움직일 수 있는 짐의 양은 2입니다. 그러니까 말이 사람보다는 두 배로 일을 많이 하는 거죠. 그걸 만약에 수레에 싣는다면 사람보다 10배 많은 양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배에다가 실으면 무려 30배에 달하는 물건들을 옮길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부피가 크면 클수록 거리가 멀면 멀수록 사람이나 말이 물건을 옮기는 것보다는 배가 옮기는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그건 우리나라만 그렇지 않아요. 그리스의 경우에 똑같은 거리에 똑같은 무게를 하나는 육지로 운송하고 하나는 바다로 운송할 경우에 그 가격 차이가 육지가 여덟 배나 더 많이 들었다고 해요. 미국 같은 경우에 기차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거랑 배로 운송하는 것을 계산해 보면 배로 운송하는 것이 약 1/3 정도 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물자를 옮기는 데에는 수레나 기차보다는 훨씬 더 선박이 안전하고 유용했던 것이죠. 그래서 아마 당시 사람들도 수레보다는 오히려 배를 훨씬 더 많이 이용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배에 대해서 좀 살펴보도록 합시다. 조선시대 배에 관한 기록은 굉장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병선 아니면 조운선 그렇지 않으면 쾌선이라고 하는 배의 이름이 남아 있고요.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조운선이라고 하는 배의 크기와 실을 수 있는 적재량 같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을 통신사라고 불렀는데 통신사선에 관한 기록들도 굉장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에서 이용했던 배로는 어선이나 아니면 강상배 같은 것들도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그럼 이런 것들 중에서 구체적으로 모양이 남아 있는 것들을 몇 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 그림은 1800년대에 유운홍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린 조운선이라고 하는 배입니다. 여러분은 조운이란 말을 오늘 처음 들어봤을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람들이 나라에 세금을 낼 때 보통 돈으로 세금을 내죠. 그런데 조선시대까지, 1894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세금을 낼 때, 쌀이나 아니면 콩으로 냈습니다. 그러면 지방의 백성들이 세금으로 낸 쌀이나 콩 같은 것들을 서울로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역시 배에다 실어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세금을 지방에서 수도까지 배에 실어서 가져오는 일을 일컬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조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배가 지금 세금을 싣고 서울로 향해서 올라가는 조운선이예요. 자세히 보면 아까 잠깐 설명했던 것처럼 돛이 두 개가 달려 있고요. 그 다음에 배 안에 쌀가마니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특이하게도 작은 배가 하나 이렇게 딸려있는데요. 작은 배는 설정으로 그린 배가 아니라 실제로 큰 배 옆에 따라다니면서 식량이나 아니면 연료 그것도 아니면 물을 조달하던 배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모습을 굉장히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가 지금 보는 배하고는 굉장히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 다음, 이 배는 통신사들이 타고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던 배입니다. 1700년대 모습을 그려놓은 배인데요. 자세히 보면 배 위에 지붕도 하나가 있고요. 사람들이 꽤 여럿이 타서 배 위를 왔다갔다 거리고 있습니다. 규모는 21m 정도 됐다고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보는 이 배는 아마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배일 것 같아요.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 그러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배가 두 척이 있을 겁니다. 하나는 거북선이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판옥선이라고 하는 배일텐데 이게 바로 판옥선입니다. 배의 위에 높은 사다리같은 기구가 있고요. 그 위에 나무집이 하나가 있죠. 저 나무집을 판옥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배를 판옥선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높이는 2m가 넘고요. 일본 배에 비해서는 규모도 두 배 이상 큽니다. 그러니까 일본 배에 가까이 가서 위에서 공격을 하면 일본 배는 별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죠. 이 배가 불과 1800년대 말까지만해도 우리나라 앞바다를 왔다갔다거리면서 수비를 하던 배였다고 생각을 하면 아마도 이색적인 느낌이 들 겁니다. 그 다음,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 배는 전선이라고 하는 배입니다. 전선은 군사들이 위에 올라타서 적과 싸우는 배입니다. 그러니까 배 위가 굉장히 단단해야 돼요. 자세히 보면 배 위에 넓은 막대기들이 이렇게 촘촘하게 가로질러져 있는데 이 위에다 널판을 까는 겁니다. 그러고 이제 그 위를 왔다갔다거리면서 병사들이 적들하고 전쟁을 벌일 때 사용했던 배죠. 네번째로 보이는 이 배는 곡식을 수송하던 배입니다. 방금 전 본 전선하고는 다르게 위에 막대기가 별로 없어요. 곡식을 실어야하는 배는 위가 촘촘할 필요가 없습니다. 곡식을 많이 싣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 보이는 것처럼 공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위에는 가능한 판을 적게 두고 듬성듬성하게 공간을 두어서 곡식을 쌓도록 했습니다. 이 배가 굉장히 허술해 보이지만 배 크기는 21m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높이는 한 4m 정도가 되고요. 돛이 2개 달려 있는거 보니까 이 배는 바다를 오갔던 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신기한 것은 도르래처럼 생긴 호롱이라고 하는게 있는 것인데 저 호롱은 닻을 올리거나 내릴 때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어쩌면 이 배는 굉장히 느리고 그 다음에 안정성이 없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날렵하지도 않고 그 다음에 배가 그러면 파도를 가로지르면서 가야되는데 앞부분이 편평하기 때문에 파도를 가르기도 어려울 것처럼 보이거든요. 근데 이 배는 사실상 빨리 가는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안전하게 곡식을 운송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배에요. 그러다보니까 파도를 가르면서 빠르게 가기보다는 파도를 누르면서 안정적으로 천천히 가도록 설계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로 보이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주제는 두 번째로 조선시대 뱃길에 관해서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 지도는 팔도지도라고 1700년대에 그려진 지도입니다. 팔도라고 하면은 우리나라 전체를 말하거든요. 바다를 중심으로해서 여덟 개의 도가 어떻게 배치가 되어 있고 그 여덟 개 도에서 배가 다니는 길은 어디였는지 그 다음에 사람이 다니는 길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촘촘하게 그린 지도가 이 팔도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어떻게 배들이 왔다갔다거렸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거든요. 이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선생님이 새로 지도를 그렸어요. 서울까지 올라오는 배들이 출발한 지점 중에서 가장 먼 곳이 창원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거제도, 부산, 김해, 그 중간에 있는 지역인데요. 거기서 배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온다면 어떻게 뱃길을 따라 올라왔을지 우리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 길이 창원 일대에서 전라도 남해안까지 배가 움직인 뱃길을 표시한 것입니다. 빨간 줄이 뱃길이거든요. 자세히 보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배가 움직이고 있어요. 여러분은 이 밑으로 쭉 내려와서 섬들을 다 피해서 이쪽으로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텐데 당시 배들은 그렇게 움직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바다로 나가면 나갈수록 육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배가 가라앉거나 아니면 부서졌을 때 구조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창원에서 출발을 해서 거의 육지 사이사이 촘촘한 길을 따라서 이렇게 배들이 몹시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도에 동그라미 두 개로 이렇게 표시한 지점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창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어떤 창고냐구요? 아까 잠깐 이야기를 했었죠. 옛날 사람들은 세금을 낼 때 돈으로 낸 것이 아니라 쌀이나 콩으로 냈다고 그랬어요. 그 쌀이나 콩으로 낸 것들을 보관할 곳이 필요하겠죠? 그 보관하는 창고를 조창이라고 불렀는데 조창들이 지금 지도에 동그라미로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조창에서 나온 배가 어떻게 어느어느 사이 섬을 지나서 전라도 지역까지 가고 있는지 이 지도를 통해서 여러분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창고가 세 개가 보이네요. 저쪽 지역에는 합포라고 되어 있는 지역에 석두창이라고 하는 창고가 보이고요. 그 다음에 사천이라고 하는 곳에 통양창이라고 하는 창고가 보입니다. 그 다음에 순천이라고 부르는 지역에는 해룡창이라고 하는 창고가 보여요. 이 창고에서 나온 배들은 결국 같은 길을 따라서 전라도 남해안을 지나서 전라도 남서쪽을 향해서 올라갔습니다. 두 번째로 이게 이제 아까 그 배들이 전라도 지역에서 어떻게 남서쪽을 빠져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여기도 보니까 해안선이 굉장히 복잡하죠? 섬들이 많은데 그 섬들 사이사이를 지나서 배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굉장히 문학적인 표현이긴 한데 이 지점을 지나는 어떤 옛 시인이 저 섬들을 보면서 이렇게 읊었어요. 바다의 섬들이 별처럼 늘어져 있다. 그 별처럼 늘어져 있는 섬들의 사이사이를 지나서 뱃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 쉬운 일이 아니었을테죠? 그러니까 이 시기에는 그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국가에서 대우도 해주고 그 다음에 뱃사람들의 존경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당시에는 사공이라고 불렀어요. 굉장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공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역시 해안선을 쭉 따라 나와서 완도를 지나서 굉장히 험한 곳을 따라 올라서 서북 지역을 향해 배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섬이 진도라고 하는 섬인데 진도하고 육지 사이의 바다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여러분도 아마 들어봤을 겁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조수의 차이를 이용해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무슨 대첩이 일어난 곳? 아 그렇죠. 명량대첩이 일어난 곳입니다. 우리 말로는 울돌목이라고 부르는데 하루에 조수가 여섯 번 이상 바뀐대요. 그래서 그 조수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면 여기를 빠져나가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미숙한 사공의 경우에 그러니까 처음 배를 타고 나온 사공의 경우에는 이 밑에서부터 명량을 지나서 저 위로 올라가는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버릴 정도였대요.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그 물살을 이용해서 일본군을 무찔렀던 전투가 그게 명량대첩이었던 겁니다. 여기를 따라서 이렇게 올라가면 이제 역시 또 섬들이 많이 늘어져 있는 전라도 서쪽 지역을 지나가게 됩니다. 전남을 다른 말로는 천사의 도시라고 부른답니다. 천사의 섬, 그렇게 부르는데요. 그 천사는 미학적으로 붙인 별명이 아니라 실제로 전라도 지역에 퍼져있는 섬의 갯수가 1004개 쯤이나 된답니다. 얼마나 섬이 많은 지역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죠. 이런 지역을 거쳐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충청도 지역의 서쪽 해안에 닿게 됩니다. 여기는 전라도 지역보다는 섬이 적죠. 그래서 굉장히 안전해졌다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안면도를 따라서 올라가면 안흥량이라고 보이는 이 지점이 있는데요. 여기가 별명이 배들의 공동묘지예요. 여기는 배가 지나가야되는 길목이 좁을 뿐만 아니라 물살이 너무 세서 여길 지나가다가 갑자기 가라앉는 배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두어서 이쪽 지역을 안내하기도 하고요. 그 다음에 절을 지어서 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막대기나 아니면 깃발 같은 것들을 두어서 배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가는 걸 지켜보도록 하거나 아니면 뱃길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을 여러 지역에 배치를 해서 배들이 지나가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여기가 배들이 침몰한 지역이라는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최근의 발굴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이 안흥량이라고하는 지역에서 최근에 고려시대 배가 무려 네 척이나 발견이 됐구요. 조선시대에 배도 한 척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까지 합치면 수만 점이 넘는 유물들이 이 밑에 깔려져 있어요. 왜 사람들이 이 지역을 배들의 공동묘지라고 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안흥량을 지나서 올라온 배들은 경기만을 따라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공항이 되어버렸지만 옛날에는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영종도하고 인천 사이를 지나서 강화도 하고 그 다음에 김포 사이의 좁은 길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여기도 배들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어요. 손돌목이라고 손돌항이라고 한자로 쓰는데 여기도 바닷물이 너무 거세서 배가 걸핏하면 넘어지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쪽 지역을 지나갈때도 바닷물이 꽉 차기를 기다렸다가 배들이 위쪽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빨간 선으로 내륙으로 이렇게 표시된 곳이 한강을 따라 들어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어요? 강화도까지만 올라오면 이제 한강 끄트머리이니까 한강에서 서울까지 가는 건 아무 일도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죠? 근데 야속하게도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 한강은 강이기 때문에 바다보다 안전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여기저기에 모래턱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물이 적은 때는 그 모래턱에 배가 걸려서 넘어지거나 아니면 가라앉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선생님이 본 자료에 따르면 금강 하구에서 강화도까지 올라가는데 걸린 기간이 한 일주일 정도 된다고 해요. 근데 강화도 북쪽 해안에서 한강을 따라 들어가는 기간이 14일 이상이나 걸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이나 그 다음에 강화도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나 다르지 않을 정도의 긴 기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물이 없을 때는 어떻게 서울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그거는 바닷물하고 또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에 바닷물이 서울에 올라왔다라는걸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근데 놀랍게도 조선 후기 개항기까지만해도 인천 쪽 강화도쪽으로 올라온 바닷물이 지금의 광진, 영등포, 서강 일대까지 드나들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물이 적을 때는 강화도 끝자락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다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가 그 바닷물을 타고 또 한참 들어가다가 바닷물이 빠지면 정박했다가 또 바닷물을 따라서 서울까지 가는 그런 방법을 통해서 지방에서 서울까지 물자를 운송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배하고 뱃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조선시대 배는 굉장히 지금 우리가 아는 배의 모습하곤 달랐죠. 나무로 만들었고 상자처럼 생겼고 그 다음에 뭉뚝하고 앞뒤가 편평한 그런 형태였습니다. 뱃길도 시원시원하게 섬을 돌아서 돌아서 이렇게 움직였던게 아니라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라는 것을 확인했었어요. 그렇게 복잡한 뱃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육로보다 뱃길을 훨씬 더 선호했던 것은 처음에 선생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바다로, 바다로, 배로, 배로 물건으로 움직이는 것이 육로로 움직이는 것보다 많은 물자들을 값싼 가격으로 운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몹시 위험한 곳이었어요. 그래서 조난이나 침몰을 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조난하고 침몰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는 학생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조난이라고 하는건 만날 조 자에 어려울 난 자를 씁니다. 어려움을 만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배가 지나가다가 암초를 만나서 쿵 부딪치거나 아니면 큰 바람이나 파도를 만나서 떠내려가는 것, 그런 것들은 조난이라고 부릅니다. 그에 비해서 배가 부숴져서 강이나 바다에 아예 내려 앉는 것을 일컬어서는 침몰이라고 불렀죠. 지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있는 지도를 보면 X자 표시된 곳이 보일 겁니다. 이게 1800년대에 조세를 싣고 서울로 올라가던 배들이 가라앉은 지점을 X자로 표시한 곳입니다. 굉장히 많은 배가 가라앉았죠 그렇죠? 이렇게 많이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러면, 가라앉은 이유가 뭘까요? 가라앉은 이후는 놀랍게도 실록이나 아니면 그 외 기록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배가 가라앉은 가장 큰 이유는 갑자기 생기는 안개나 아니면 파도,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더러 배를 운송하는 기술이 미숙해서 가라앉는 경우도 있기는 했어요. 근데 놀라운 것은 배가 그렇게 많이 가라앉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93.7%나 되는 사람들이 살아났다고 해요. 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은 가라앉은 배에서 회수한 곡식의 양은 무려 50%이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상식으론 이해가 잘 안될 것 같아요. 배가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93.7%나 되는 사람들이 살아남았을까? 배가 곡식을 싣고 지나가다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50%나 되는 곡식을 다시 끄집어 올릴 수 있었을까? 그건 나름대로의 비밀이 있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설명을 할 때 조선시대 배들은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고 했죠? 그것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대부분 조세를 실은 배가 지나갈 때면 그 지역 사람들이 바닷가로 나와서 그 배가 자기네 지역 시작하는 지점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안전하게 가는지 안가는지를 확인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만약에 배가 가라앉으면 곧바로 사람들이나 배를 보내서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그 다음에 가라앉은 배들을 갈고리로 들어올렸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죽은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그 다음에 바다에 빠트린 식량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선 정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물건을 50%나 끄집어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걸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기록을 보면 조운선이 운송해야 되는, 움직여야 되는 기간은 법으로 2월부터 4월까지로 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정해진 기간에만 배가 운송할 수 있도록 했어요. 2월에서부터 4월, 지금은 그 봄 정도에 해당이 되는 기간이겠죠. 근데 그건 음력이기 때문에 양력으로 환산하면 3월 중하순부터 5월까지가 됩니다. 그 기간 동안만 배가 운송할 수 있어요. 움직일 수 있어요. 그 외에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은 그 전에는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아서 한강을 제대로 따라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고요. 그 후에는 장마가 들어서 배가 움직이다가 자칫 장마를 만나면 곡식이 썩거나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조선시대 사람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안전하게 물건들을 운송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고민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여러분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나라에도 운하 개척 시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운하 그러면 중국의 대운하나 아니면 이탈리아, 그런 지역의 운하를 생각할 것 같아요. 공부를 좀 많이 한 학생들은 파나마 운하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운하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언제부터냐면 고려 시대부터요 . 고려 시대에도 무려 세 번이나 시도를 했었고요. 조선 시대에는 10번 이상을 운하를 파기 위해서 조선 정부가 굉장한 정성을 기울입니다. 어느 지점에다 운하를 팔려고 했을까요? 아까 선생님이 설명했던 부분에 힌트가 있는데 배들의 공동묘지라고 불렸던 아 네 맞습니다. 안흥량이라고 하는 곳에다가 운하를 파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니까 안흥량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배를 운송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지점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렇다보니까 사고도 많이 났다고 얘기를 했어요.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지역만 피해갈 수 있다면 조난사고를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안흥량을 지나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게된 것입니다. 여기 보면 고려 시대, 고려 시대 인종 때 그 다음에 우왕 때, 공양왕 때 운하를 팔려고 시도했다라고 하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여러 차례, 태조 때도 있고요. 태종 때도 세 번이나 있죠? 그 다음에 세조 때도 있고 중종 때도 있죠. 이렇게 여러 차례 굴포 개척 시도를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죠. 굴포라는 말을 내가 여러분에게 사용을 했는데 굴포라는 말이 지금 우리 아는 말로 바꾸면 그게 운하라는 말입니다. 포를 파냈다. 뱃길을 파냈다. 그걸 운하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조선 후기에 가면 선조 때, 현종 때 정조 때도 운하 설치 얘기가 나옵니다. 그 어느 지점인지 여러분 굉장히 궁금할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도를 가지고 왔죠. 이 지도에 보면 튀어나온 반도가 하나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쭉 뻗어나간 이 반도를 태안반도라고 불러요. 태안반도 아래쪽에는 안면도라고 하는 섬이 있습니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이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고 해요. 육지하고 붙은 곳이었는데 안면도 하고 홍성 사이에 이 바다를 천수만이라고 부르거든요. 천수만을 왔다갔다 거리는 배들이 바깥으로 나가려면 밑으로 쭉 나가야 되니까 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인조 때 김류라고 하는 사람의 건의로 일부러 뚫어서 만든 곳이 안면도 하고 태안 사이의 뱃길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운하라고 볼 수 있겠죠. 섬이 아니었는데 섬이 된 안면도 그 다음에, 그 안면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천수만의 가장 북쪽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건너편 위에는 가로림만이라고 하는 바다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두 바다 사이에 잘록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게 불과 7km 밖에 되지않아요. 이 길만 파면은 그 두려운, 뱃사람들이 정말 공동묘지라고 생각하는 그 안흥량을 피해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10차례 이상이나 여기를 팔려고 시도를 했다는 거죠. 근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가로림만하고 천수만의 바닷물의 높이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8km 되는 지점 중에 약 6~7km 정도는 고려시대, 조선시대 여러 번 뚫어서 파는데 성공을 했대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파기만 하면 개흙과 모래가 계속 몰려와서 금방 덮어놓고 가고, 금방 덮어놓고 가고 그러기 일쑤였대요.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운하를 파기만 하면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밤마다 매꿔 놓아서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가 기록에는 뭐라고 나와 있냐면 마지막 지점에 불과 2~3km 정도 남은 지점에 바위가 가로로 누워 있어서 그 바위 때문에 깊게 바닥을 파지 못해서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두 이야기가 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선생님 생각에는 국가 기록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도 암반 상태를 보면요. 이쪽 지역의 지질 구조를 보면 그 뚫지 못했다는 지점이 화강편마암지대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돌을 뚫는 방법이 열을 가해서 바위를 약해지게 만든 다음에 그걸 파내는 방식이었는데 화강편마암은 너무 강도가 강해서 그게 잘 되지 않거든요. 아마 그래서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해서 오늘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를 다 살펴봤습니다. 총 네 가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말로 배를 만드는 방법을 배무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했고요. 조선시대 배들이 우리가 아는 배들이랑 어떻게 달랐는지에 대해서 살펴봤구요. 그 다음에 조선시대 배들이 저 경상도 남쪽에서 출발을 해서 어떻게 서울까지 갔는지 그 항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배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지점 안흥량이라고 하는 그 지점 거기를 피하기 위해서 굴포 운하라고 하는 걸 여러 번 파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또 여러분하고 같이 나눠봤습니다. 지금은 바다가 여행하는 곳 아니면 물고기를 잡는 곳 정도로 생각이 되지만 조선시대 바다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모든 물자들이 오가는 운송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랑 조선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많이 달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바다의 중요성이 지금 약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외국하고 무역을 할 때 주로 물건을 들여오는 방법은 컨테이너를 배에다 실어서 들여오는 방식입니다. 아직도 비행기나 아니면 자동차보다는 배로 물건을 운송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나 효율 면에서나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이번 강의를 토대로 해서 여러분이 바다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강의는 여기까지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