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엔 바다톡톡] [한국 해녀와 문화이야기 (재)독도재단 김수희] 우리가 몰랐던 바다이야기 수요일에 바다톡톡 본강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연은 독도재단의 김수희 연구부장님께서 해주실 예정입니다 먼저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수희입니다 오늘 어떤 강연을 해주실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은요 우리가 바닷속에 있는 자원들이 여러 가지 자원들이 있잖아요 그 자원의 채취 방식에 대해서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닷속에 있는 그 자원을 우리가 언제부터 먹었고 현재까지 이 바다 자원을 저희들이 이용을 하고 있는데 그 이용의 주체자라고 할 수 있는 그 해녀들의 활동에 대해서 오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 근대일본어민의 한국진출과 어업 경영, 2023 별찌인문교실 해녀, 바다를 품다] [경북 해녀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2023.10.11 김수희(독도재단 교육연구부장)] [CONTENTS 1.해녀 어업의 역사 2.경북 해녀의 물질 어업 3. 해녀어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해녀의 역사 그리고 우리 경상북도 대구를 포함한 해녀들의 어업 활동 그리고 우리가 해녀를 얼만큼 알고 있는가 이 세가지 이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해녀 현황(2016년말 기준) 한국해녀 9,629명 경북해녀 1,493(2022년 : 포항 1,068) 일본 해녀 현황(2010년) 2,172명]우리가 바닷속에 있는 자원을 먹기 시작한 것은 여러분도 역사책에서 많이 봤을 겁니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 이야기 들어보셨죠? 바닷속에 있는 전복이나 소라, 키조개 여러가지 자원을 먹다 남은 쓰레기장이 있어요 쓰레기장이 신석기 시대의 패총이라 하는데 그 쓰레기통 안에 사람들의 유골도 발견이 됐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가 일본보다 빠르니 늦으니 구석기 시대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고 우리나라의 국가는 언제부터 시작이 됐는지 그런 이야기를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신석기 시대라는 것은 바닷가에서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대가 신석기 시대라고 하는데 신석기 시대는 주로 약 지금부터 한 30만 전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바닷가 근처에서 빗살무기 토기라든가 이런 토기를 만들어 내서 쌀 농장을 쌀을 경작을 하고 그리고 열매를 따먹기 시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이 시기가 신석기 시대에 해당이 되는데 이 신석기 시대에 사람들이 먹다 남은 그 쓰레기장을 우리는 패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패총에 있는 소라나 전복 이런 패류 같은 경우에는 수심 10미터 이내에 들어가야만이 딸 수 있거든요 아니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가야만이 채취, 포획을 할 수 있는 곳이 이런 패류들입니다 그러면 이 패류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배 위에서 이렇게 앉아가지고 도구로 살살살 따는 게 아니고 직접 물속에 뛰어들어가서 다이빙을 할 경우에 어떻게 다이빙을 해야 되죠? 우리 선생님이 그래도 아시죠? 숨을 참고 물속에서 1분 내지 2분 내지 3분 정도 활동을 해야만이 물속에 있는 깊은 2M 이상에 있는 정복이나 소라를 포획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활동을 우리 인간이 30만 년 전부터 시작을 해서 현재까지 우리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활동이 신석기 시대에 인간이 인간들이 활동을 한 시대에는 세계 아마 각국에서 영국, 프랑스 세계 각국에서 그러한 문화, 채취 방식이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이런 물속에 들어가서 자원을 포획하는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또 어느 나라가 있을까요? 네 우리나라하고 일본 밖에 없어요 다른 미국 영국 뭐 미국 이런 아랍 중동 이런 쪽에서도 있었는데 다 사라졌어요 그래서 왜 우리나라하고 일본만 이런 바다 속에 있는 자원을 포획하는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었을까라는 이야기를 오늘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이런 바닷속의 자원을 채취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약 9600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더 많이 있었는데 일본에는 지금 2000명밖에 없습니다 많이 줄어들었죠 그래서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이 2천명 되는 이 사람을 어떻게 유지를 하고 보존을 하고 이런 사람들을 더 이런 어업을 활성화시켜서 자원으로 활용을 할까라는 여러 가지 지원 보존책을 마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찬가지고요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에 제주도 해녀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나라 해녀를 중심으로 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돼서 이 해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고 이 해녀들의 어업이 단절되지 않도록 국가가 전 세계가 보존을 해야 된다는 협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9000명 정도가 있는데 그 중에서 포항에는 1500명 정도의 해녀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되게 많죠 이 해녀들이 방식이 30만 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포획활동하고 지금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계속 유지가 되고 있는 거죠 여기서 제가 문제를 한번 내보면 우리가 해녀들의 업활동을 물질이라고 하거든요 물질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물에 들어가서 어떤 대상을 포획하는 활동을 물질이라고 하는데 1번 2번 3번 한번 보세요 4번 5번 6번 7번 8번 8가지 물질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서 포획하는 활동 을 이제 물질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첫 번째 장면 여기 1, 2, 3번에 물질이 보입니까? 몇 번인 것 같습니까? 패스 4번, 5번, 6번, 7번, 8번 6번 5번, 6번, 4번, 7번, 8번은 왜 아닌 것 같습니까? 그렇죠 일단은 해녀라고 하면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서 맨몸으로 들어가서 어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7번 8번은 산소 마스크를 해서 아니에요 1번 2번 3번은 물질이 아니고 물속에 가서 놀이하는 거예요 놀이하는 거예요 이게 되는 해녀라고 할 수 없어요 그냥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서 바닷속에 들어가서 스킨스쿠버라는 방식으로 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해녀는 바닷속에 있는 자원을 따고 있어요 4번, 5번, 6번이 해녀의 일입니다 해녀는 물속에 들어갈 때 맨손으로 안 들어가죠 어떤 목적이 있으니까 홈이나 낫이나 칼을 들고 들어가요 해녀가 돈이 되는 자원을 포획을 하는 거죠 옆에 있는 가운데 그림은 일본 해녀들이에요 일본 해녀들의 특성은 배에 밧줄을 묶고 물속에 들어가요 그러면 바다 속에 배 위에 있는 어부가 이 밧줄을 재빠르게 잡아당기면 해녀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질을 더 오래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제주도 해녀나 아니면 포항의 해녀들은 숨을 들이마시고 물속에 들어가서 어로활동을 하다가 숨이 남을 때 올라와야 돼요 숨이 다 끊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삶과 죽음의 차이에서 결국은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있어요 요 며칠 전에도 제주도 70대 해녀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라는 보도가 신문에 저도 봤거든요 그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해녀들의 이야기로서는 전혀 해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해녀들은 수십 년간 물속을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면서 내 숨의 깊이, 내 숨의 크기, 내 숨의 작기를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해녀들은 물속에 있지 않습니다 나옵니다 그게 해녀들의 특성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해녀들의 특성은 밧줄을 메고 안으로 들어가면 올라올 때 밧줄을 밑에서 흔들면 위에 있는 사람이 잡아당기는 이런 게 전통적인 일본의 방식입니다 이 밑에는 머구리라는 사람이에요 산소 마스크 이 산소통을 쇠로 된 산소통을 머리에 쓰고 그리고 물속에서 걸어다니면서 전복이나 소라를 따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이렇게 먹을 것도 많고 주위에 해산물이 차고 넘치고 그런데 해녀들이 숨을 참고 삶과 죽음을 들락날락하면서 채취하는 것보다 이렇게 산소 마스크를 들고 아니면 위에서 산소를 공급해서 물속에 들어가서 피조개나 여러 가지 조개류를 따는 게 더 능률적이고 경제적이라고 생각이 들잖아요 그렇죠? 그렇지만 해녀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이것보다 더 경제적인 게 해녀의 어로활동입니다 [해녀의 물질 해녀의 정의 -마을어젱에서 우뭇가사리, 미역 등 해조류와 패류를 채취하는 직업 여성 -공기 탱크 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일부 지역에만 있음 - 2016년 12월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17년 5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 나잠어업: 산소 공기 자이없이 잠수한 후 낫, 호미, 칼 등을 사용하여 패류, 해조류 그 밖의 정착성 수산동식물을 포획, 채쥐하는 어업(수산업법]) 그 말씀을 하기 전에 해녀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게요 자 제가 해녀가 되고 싶어요 저도 이제 제주도 출신이거든요 물질을 잘해요 바닷속에 들어가서 저도 수영을 꽤 잘합니다 그런데 나 오늘부터 해녀 할래 그러면 해녀를 할 수 있을까요? 해녀를 할 수 없어 해녀는 수산업법 상에 등록이 돼야 돼요 해녀증이 먼저 있어야 돼요 해녀가 되려고 하면 수산업 협동조합에 가입을 한 다음에 그 마을에 있는 마을어장을 이용할 수 있는 어촌계에 등록을 해야 돼요 두 가지 등록권이 없으면 해녀는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해녀가 되는 조건이 1년 동안에 60일 이상의 어로활동을 해야 돼요 당장 내가 어촌계에 들어가서 해녀에서 돈벌이 할래 해녀 못합니다 왜? 그 마을에 있는 해녀들이 허락을 안 해줘요 그 연안에 있는 어민들이 저를 쫓아내요 네가 뭔데 와서 어업을 하냐? 가라 그런데 저는 허락 없이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라는 형태로 해녀들의 어장이 아닌 다른 어장에서 업은 할 수 있어요 해녀 어장이라는 곳이 있어요 수심 15미터까지가 우리나라 수산업법상에 정해지는 해녀들의 어장이에요 연안에서 15미터 수심 15미터까지는 해녀어장으로 우리나라에서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녀는 수산업법상에 나잠어업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잠어업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잠 어업인은 나 자는 벗을 나자 잠은 잠수할 잠자 그래서 나잠 어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산업법상에 등록이 된 나잠 어업이라는 것은 이렇게 돼 있죠 산소 공기통 없이 잠수를 하는 거예요 산소통 들고 있으면 이 사람은 해녀도 아니고 나잠 어업인도 아니고 수심 15미터 안에서 잠수합니다 어로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소공기통 없이 나시나 호미 칼을 사용해서 패류 전복 소라 성게 그리고 해조류 미역을 미역 그 밖의 정착성 수산 동식물을 포획 채취하는 어업이 나자암 어업으로 수산업법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녈의 정의는 마을어장 그 마을에 있는 어장 마을어장에서 우뭇가사리, 미역 등 해조류와 패류를 채취하는 직업 여성입니다 직업 돈발이하는 여성이 해녀죠 그러니까 취미활동으로 스킨스쿠버 해가지고 바다에 가서 즐기는 거예요 하루 종일 들어 누우면서 오늘은 진짜 물고기 많네 기분 좋네 이런 사람들은 해녀가 아니에요 놀러 간 거예요 직업 여성이 해녀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해녀들은 이런 장비가 필요하죠 이거 무슨 보기라고 합니까? 잠수 해녀들은 고무로 만들어졌으니까 고무복 또 물속에서 일을 하려고 하면 수경, 안경이 있어야 되겠죠 그리고 연철이 필요해요 연철은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갔을 때 물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옛날에는 돌을 차고 들어갔어요 돌을 차고 발에 돌을 묶고 아니면 옛날에 제주 해녀들은 허리에 전복 껍질을 수십 개를 묶어서 물속으로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고무 옷을 입으면서 납덩어리를 배에 차고 들어갑니다 보통 20KG 내지 30KG 자기 몸무게 반 정도 되는 납덩어리를 차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기는 이제 잘못됐는데 작살이 아니라 주로 미역을 캐니까 이제 호미이나 낫을 들고 가겠죠 일본하고 제주도 현역 이런 형태가 팬티만 입고 들어가는 일본 해녀 그리고 소중기라고 하는 물 소중기라고 하는 제주 해녀들이 입는 옷 이 옷이 고무옷이 1970년도에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1970년, 75년 전후에 75년 전에는 다 이런 옷을 입고 물질을 했습니다 거의 벗은 몸이나 마찬가지였죠 일본 사람들은 팬티만 입고 우리 제주도 해녀들이 자랑하기를 제주도 사람들은 16세기부터 원피스 17세기부터 원피스라는 옷을 입어서 물질을 했고 일본 사람들은 팬티만 입고 물질을 했고 그렇지만 우리가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에서 벗은 몸을 남자 앞에서 벗고 이런 거는 용납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이렇게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했었습니다 이게 일제시의 때 사진입니다 [아마복을 입은 해녀 우키오에 가타가와 우카마로 아마 그림(1857)] 일본 사람들이 아마복을 입은 해녀라고 해서 19세기, 18세기 우리나라 김홍도처럼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거를 풍속화로 해녀 그림을 그려서 아주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이 풍속도를 보면 상체는 안 입었어요 밑에는 팬티밖에 안 입었는데 그림이라서 치마를 입혀놨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입고 이것이 전형적인 일본 사람들의 잠수 어업 방식입니다 우리나라는 남성들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은 결국에는 다 사라져버렸어요 제가 연구하기로는 임진왜란 7년 전쟁이 일어난 직후에 남자들이 그때는 많이 죽었죠 남자들이 수군들이 거의 포작인이라 해서 물질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자들은 없어지고 여자들만 남게 됐어요 그래서 전복이라든가 국가에서 바다 자원을 너무너무 좋아했던 거예요 바다 속에 있는 이거를 제주도 해녀들이 진상을 하고 공납을 했는데 제주 해녀들을 그 당시에는 군, 군대 군자를 써가지고 잘하는 사람은 상군, 중간층인은 중군, 제일 못하는 사람은 핫바리이라 해서 하군 이렇게 이름을 지어서 해녀들을 구분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 전통이 제주도에 남아있어서 이 상군이 모든 해녀의 리더가 돼서 물질을 통솔을 하고 이 사람들이 공동체를 맺어서 해녀 활동을 했었어요 그래서 이런 공동체 문화, 해녀의 문화가 남아서 유네스코에 유형 문화유산에 등록이 될 때 그게 가장 큰 기회를 했어요 저도 이제 잊어버리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어릴 때 저도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해녀들을 보면 제일 선두의 상군이라고 하는 이 해녀가 앞장서서 나갑니다 왜? 오늘 이 바다의 날씨가 어떤가 바다 속의 날씨가 어떤가 이 수많은 해녀들이 물질을 나갈 때 안정보장이 될 수 있는 게 상군의 역할이에요 그러면 가는 모습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실을 때 학익진이 있죠 학익진처럼 앞에 있는 선두가 가면 뒤에 있는 중군 해녀들이 따라가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핫파바리 해녀들이 제일 못하는 나이 든 해녀나 어린 해녀들이 뒤에 따라가는 수십 명이 그렇게 단체를 지어서 해녀활동을 했었습니다 해녀는 내가 하고 싶다 해서 혼자 가서 하는 게 해녀어업이 아니에요 해녀들은 항상 공동체 10명이면 20명이면 5명이면 이렇게 공동체를 지어서 어로활동을 하는 게 해녀들의 어업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남자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입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훈도시 나체처럼 남자들은 하고 여자들은 상체를 안 입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이시죠 그런데 위에는 고등학생들이 입는 브라우스를 따가지고 입고 밑에는 고등학생들이 입는 아까처럼 일본 사람들이 기모노 형식으로 앞에 천을 둘러서 무는 형식 이게 1900년대에 일본 사람들이 입기 시작을 했답니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보니까 남자, 여자나 바닷가에서는 전부 다 옷 벗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혐오스럽게 옷 벗고 돌아다니냐 옷을 갖춰 입어야 된다 이래서 1900년대 되면서 일본 여성들은 이렇게 옷을 입고 남자들도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서 옷을 입히고 이렇게 해서 어민들한테 옷을 입혔는데 그래서 이 구한말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바다를 침입을 많이 했어요 왜? 우리나라의 자원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거든요 그리고 특히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바다 자원에서 가장 돈벌이가 되는 게 우뭇가사리였어요 우뭇가사리는 지금은 별로 채취도 안 하고 그러는데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우뭇가사리가 해녀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어요 미역의 약 30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게 우뭇가사리였어요 왜 우뭇가사리가 돈벌이가 됐냐 하면 1900년 직후에는 우뭇가사리가 비행기의 풀 또 일본 사람들이 외국에 수출하는 비단을 짜는데 섞는 풀이나 이런 공업용 원료로 썼어요 그런데 우무가사리가 나는 바다는 동남아시아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었어요 우무가사리가 나는 곳은 일본하고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제 일본 사람들은 이 우뭇가사리를 가지고 일본 양갱의 원료로 쓰고 일본의 뭐 있죠 일본의 과자 오까시라고 하는 그 과자에 쓰고 또 그때부터 일본 사람들이 비단을 맞는데 사용을 하다 보니까 우뭇가사리의 자원이 우뭇가사리가 한 수심 10미터 정도 있거든요 우뭇가사리를 다 채취를 해버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 우뭇가사리를 채취를 안 했어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복, 미역 그래서 일본 남자들이나 일본 해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뭇가사리 전복을 무진장 포획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왔을 때 아까처럼 옷 벗고 돌아다닌 거예요 우리나라 남성들이 용납을 못했죠 그래서 막 치고 박고 싸우고 그러면서 이제 막 큰 크고 작은 일들이 막 벌어져가지고 일본 영사관에서 우리나라 어민 잡아가고 그걸 핑계로 해서 또 연안의 거주권을 일본 사람들이 확보를 하고 그래서 이런 외교관의 문제 중에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가 전쟁, 무력적 행동 이런 게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을 경우에 우리나라가 일본 사람들의 침입을 법적으로 용납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그거를 금지할 수 있는 금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나라 바다가 1900년 전에 1870년 90년 이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연안에 와서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연구를 제가 연구를 했고요 그런 연구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거예요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 해산물] 해녀가 필요한 이유가 이겁니다 이렇게 바다 자원이 있는데 전복이나 소라나 성게나 산소마스크를 들고 머구리가 산소마스크를 들고 물속에 걸어다니면서 포획을 하면 돼요 그런데 이 미역은 수심 3미터에서 5미터에 있어요 머구리가 들어와서 포획을 하기에는 경제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우리가 먹는 돌미역 그건 다 해녀들이 포획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돌미역이라는 것은 양식미역 있잖아요 완도에 있는 양식미역은 만원어치만 하더라도 이만큼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돌미역은 아주 길고 그리고 비싸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미역을 먹는 문화 미역을 숭상하는 이런 가치 이게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역을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일본의 5배 이상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다 일본에는 우리는 이렇게 긴 미역을 팔잖아요 해녀들이 포획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미역을 이렇게 팔아요 100그램, 150그램씩 이렇게 꺾어서 우리나라 해녀들은 미역 때문에 지금까지 해녀 어업이 필요한 거고요 일본에는 미역이 아니라 전복이에요 일본 사람들은 이 전복을 지금도 천황가에서는 이 전복을 길게 점여서 천황에게 천황 제사 때 제사를 올리고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귀한 이런 잔치 날이라든가 또 연회에서 또 귀한 모음이 있을 때는 꼭 전복을 씁니다 그래서 일본의 해녀들은 미역을 채취를 안 하고 전복을 주로 채취를 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전복의 종류를 키워가지고 바다에 투입을 하면 해녀들은 이만큼 큰 전복만 채취를 해요 우리나라 해녀들처럼 1년에 60일간 해라, 70일간 해라 그런 어업적인 조건은 없고요 무조건 그 마을에서 오늘은 전복 채취하러 가자 이러면 그냥 채취하러 가요 일본에는 점심시간도 꼭 지켜요 우리나라 해녀들은 무지막지하게 아침부터 가서 저녁까지 혹사되도록 일을 하는데 일본의 해녀들은 딱 10시부터 내가 11시에 들어갔다 물이 오늘은 물이 너무너무 안 좋아서 11시에 들어갔다 이러면 12시에 나와야 돼요 왜? 점심시간을 꼭 지켜야 돼요 일본 해녀는 12시부터 1시까지 그리고 웬만큼 날씨가 나쁘면 일본 해녀들은 안 들어가고 일본 해녀들은 3월부터 9월까지만 물질을 해요 우리나라 해녀들은 눈이 와도 물질을 해요 눈이 너무너무 많이 내리고 춥고 막 이러는데 두레박이 둥둥둥둥 떠 있어요 해녀들이 어로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해녀들의 건강 그리고 지속 가능한 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같이 해녀를 보호하는 정책적인 게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수산업법이 60일간 이상 해야 되는 해녀업 이런 거는 이런 수선업법이 있는 한은 젊은 30대, 40대, 20대 아가씨들이 해녀를 직업으로 선택을 안 하겠죠 그래서 일본에는 일본의 선물을 받아보면 이렇게 리본처럼 묶여있어요 보신 적 있으세요? 일본 사람들이 빵이나 선물을 줄 때 그냥 박스처럼 이거입니다 안 갖다줘요 항상 종이를 하나 덮어서 줘요 이거 일본말로 노시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어떤 증정품 선물을 낼 때 예의를 갖추어서 선물을 줘요 그때 이 노시라는 것은 옛날에는 전복을 잘게 저며서 길게 한 전복을 선물 위에 다 꽂아가지고 주는 광습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것 대신에 이런 포장지를 위에 하나 덧붙여서 포장을 해서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종이학이 있죠 종이학을 접는 이 종이 접기도 이 노시에서 나온 겁니다 이 전복을 잘게 접어서 위에 꽂아놓는 게 그래서 일본 귀족들은 선물을 줄 때 선물을 줄 때 이거 하나 가지십시오 이렇게 주는 게 아니고 꼭 위에다가 전복을 잘게 깎은 점인 것을 위에 꽂아가지고 선물을 주는 관습이 일본에는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귀족들은 그래서 지금은 이 종이를 활용을 해서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 해녀가 필요한 이유는 돌미역 미역을 캐는 거고 일본의 해녀들이 지속적으로 해녀 어업이 유지가 되는 것은 전복이에요 그만큼 경제적 가치가 크다는 거죠 미역만 따도 해녀들이 돈 벌 수가 있어요 일본의 해녀들은 전복을 따야만 돈을 벌 수가 있어요 그만큼 가격이 비싼 거예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해녀가 딴 긴 돌미역을 비싸도 우리가 돈을 주고 사 먹습니다 일본에도 자연산 전복은 비싸요 그래도 일본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전복을 사 먹습니다 [최초 해녀 기록 미역을 캐낼 때는 소위 잠녀가 발가벗은 알몸으로 낫을 갖고 바다에 떠다니며 바다 밑에 있는 미역을 캐어 이를 끌어 올리는데 남녀가 상잡하고 있으나 이를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때 놀라지 않을 쑤 없다 (이건 . [제주퐁토기], 1629년)]우리나라 최초의 해녀 기록은 제주도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유배를 간 양반이 제주도에 가서 보니까 너무 놀랐어요 아니 제주도 가보니까 남자 여자가 발가벗고 같이 바닷속에 들어가서 전복이나 미역을 따고 있었어요 너무 놀라운 일이에요 물속에 들어간다는 그 자체만 해도 놀라운데 남자 여자가 같이 물속에서 어로 활동을 하고 있더라라는 기록이 17세기에 이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처음으로 그러니까 이때는 해녀가 아니고 잠녀라고 기록이 돼 있어요 이 해녀 바다해자에 사람인 자라는 것은 바다의 사람 이런 해녀라는 용어가 일본 사람들이 쓴 용어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잠녀라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해녀라는 용어 안에 노동의 개념이 포함이 돼 있어요 이 잠녀라는 개념에는 노동이기보다는 국가가 필요한 진상물품을 공납을 하고 그리고 진상을 바치기 위해서 어로활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나잠이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서 한국 바다에 있는 우뭇가사리, 감태 이런 해녀들이 그걸 채취를 해서 돈벌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제주 해녀의 잠녀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해녀라는 이름으로 통일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는 잠녀라는 말은 역사적 용어에나 나와 있고 거의 대부분이 다 해녀로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시대 기록은 이 해녀를 잠녀 남자들은 포작이라고 돼 있습니다 포 자는 전복포자 전복포자의 전복을 따는 사람 이렇게 이제 명칭이 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인의 해녀의 특이성 연구 도리이 류우조 - 일본의 인류학자(1870~1953)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한국 조사, 2980명 사진 기록 해녀, 백정, 무녀, 기생, 관노 특정계층의 성인남녀, 골상학적, 관상학적, 인종학적 신체적 특징을 기록 일선동조론, 일본제국주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 그런데 이제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 온 일본 사람들이 해녀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했었어요 제주도의 해녀가 1920년대 같은 경우에는 제주도 해녀의 제주도의 한 20대 아가씨의 2분의 1이 해녀가 됐어요 일제시대 때는 그러니까 마을마을마다 해녀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그런데 이 해녀들이 경상북도 포항이나 울진이나 이런 거제도나 남해안에 있는 게 아니고 제주도 해녀들이 어업기간이 되면 우뭇가사리 제철이 되거나 미역 제철이 되면 이 제주도 해녀들이 전국 바다로 나가는 거예요 전부 이렇게 갈매기처럼 날아다니는 거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아니 12월 달에 팬티바람으로 제주도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전복을 채취를 하고 가을에도 지금 철에도 물이 이렇게 차가운데 성게를 채취를 하고 있어요 제주도 해녀는 굉장히 태어날 때부터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연구를 시작을 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그래서 제주도 해녀에 대해서 많은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서 이거는 제주도 해녀들 사진인데 얼굴 보면 다 10대 15살 16살 된 아가씨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해녀가 돼서 바닷속에 가서 물질을 하는 아가씨들이에요 이런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그래서 머리둘레 체형 이런 거 많이 찍었어요 그런데 제주도 해녀들은 한국에 있는 여자들하고 다르다 일본에 있는 해녀들과 다르다 너무 강인하다 너무너무 강인하다 [해녀의 선천적 요소 주목 -잠수 능력 탁월과 활동에 주목 약 20m, 2분 잠수. 한달 15일ㅇ 이상물질, 분만하기 직전까지 활동 -미국무성 해녀조사 연구(1960년대) 심해 공사에 제주해녀 활용계획 뉴욕주립대 허어만 란(Hermann Rahn) 교수와 연세대 홍석기교수 잡지 기고(1967), 고신대학 의과대학 박양생교수 잠수 생리학적 기능 조사(잠수시간, 속도, 빈도, 해저시간), 부력조설, 폐기능, 동맥혈의 이산화탄소 분압, 신장, 순환기능 등 조사 -해녀의 선척적, 유젅거 요소가 없고, 제주도가 해녀의 발상지로 기록]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게 제주도 해녀다 라고 해서 조사를 많이 했어요 미국에서도 이 제주도 해녀를 잠수 역할로 쓰려고 해방 이후에 미군들이 제주도 해녀를 조사를 많이 했어요 잠수부 대신 활용을 하려고 그리고 우리나라 의학대학에서도 이 해녀를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론은 뭐냐 결론이 이거예요 해녀의 선천적 유전적인 것은 없다 선천적이지가 않다 한반도의 어느 여성이나 볼 수 있는 그런 체형과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라고 하면서 해녀의 발상지는 제주도다라는 것 한 가지밖에 추적을 못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선입견들 있잖아요 제주도 해녀들은 제주도 사람들은 강하다 생활력이 강하다 남자를 먹여 살린다 뭐 이런 거는 다 뭐라 그럴까요 이게 선입견에 불과하고 제주도 사람들은 어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것도 없고 선천적인 게 없고 생활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제주 해녀다 라는 게 연구결과가 밝혀졌어요 우리 경북에는 해녀가 약 1 ,500명 정도 있습니다 [지역별 구성 -포항시 624명(65%) -영덕군 143명 -경주시 121명 -울진군 58명] 근데 한 1 ,000명 정도가 포항에 있는 구룡포 아시죠? 구룡포에 천명 정도 해녀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 재작년에 경상북도가 구룡포를 해녀마을로 지정을 하면서 통계청에 한국에서 최초로 경상북도 해녀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걸 근거로 해서 보니까 경상북도는 포항에는 65 % 전체 65 %의 해녀가 있고 나머지는 영덕 경주에 해녀가 있더라 [나녀 성별 구성 경상북도 해녀 총 952명 (해녀 809명, 해남 143명) 해남의 특성 연령 : 40~59세 52명 70~79세 32명 교육: 고졸이상 71명 지역: 영덕 40명/울진 38명 /경주 없음] 그리고 남자들도 상당히 많은데 85 % 정도가 여성이고 15 % 정도가 남자 해녀예요 남자 해녀를 선비 사자를 써서 해사라고 그럽니다 여자는 해녀 남자는 해사 이렇게 해서 15 % 정도가 이제 해사인데 해사는 교육이 엄청 높은 사람 고졸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여성은 거의 초등학교 졸업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해사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해녀는 나이 많은 70대 이후 80대 된 해녀들이 많아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다르죠 [1970년대년 증가 -고무옷 등장 -맨살을 드러내지 않아 직업의식 강화 -노동시간 증가 *영덕군 축사년 경정리 김0해녀: 내가 물에서 하는 게 뭐 자꾸 위축돼, 남한테 천대받는 것 같고 돈 벌어도 물에서 한 건데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 / 옷을 벗고 일하면 그렇지만은 옷을 다 입고 하면 얼굴만 보이니깐 객지 사람들이 쳐다봐도 아무 불편 없지 객지 사람들이 저 사람들 해녀다. 저렇게 우째 하는교? 하면 좀 민망은 하지] 우리 포항에는 해녀가 없었어요 우리 포항이나 경상북도나 한반도에는 해녀가 없었어요 라는 말은 뜻이냐면 제주도 해녀처럼 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해녀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 해녀들이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1 ,000명 이상 1 ,500명이 포항에서 경상북도 해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녀들이 증가한 이유가 뭐냐 하면 고무복이 있기 때문이에요 고무복이라는 것은 위에 모자부터 슈트를 입고 전부 다 몸을 가린 거예요 우리나라 여성들이 남자들 앞에서 그 마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70년대 해녀들이 입었던 낡은 옷을 입고 물에 젖었을 경우에는 정말 형편없잖아요 물에 빠진 생쥐 저리 가라예요 그런 옷을 입고 과연 물질을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그런데 해녀들이 미역이 돈이 되고 여성으로서 돈벌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해녀들이 고무복이 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경상북도 해녀들이 증가를 했어요 그래서 왜 해녀가 안 됐냐 이러니까 이 해녀들의 증언을 보면 남한테 천대받는 것 같고 그냥 해녀복을 입으면 제주도 해녀들처럼 물소중이 같은 옷을 입으면 창피하고 돈을 벌어도 부끄럽고 그런데 고무복을 입으니까 너무너무 남한테 그런 것도 없고 너무 좋더라 불편 없다 이러면서 70년대 이후에 경상북도의 해녀들이 증가를 했습니다 증가한 이유가 그만큼 구룡포 경상북도의 바다에 자원이 많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질 연습 구룡포 성0해녀 애키우면서 하기는 좋아. 해녀는 서너 시간만 하고 오면 되잖아. 시간적인 단축이 있더라. 애 키우는데 좋지. 몇시간만 애 맡아달라고 하면 되겠더라고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권0 해녀 헤엄질도 할 줄 모르고 비닐봉지 머리에 덮어쓰고. 물질은 가르쳐준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내가 해야 하는데 헤어을 잘 치지 못하니까 안 늘어] 그리고 이 당시에는 여자들이 일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어요 결혼한 여자가 일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어요 알바가 없었어요 그러는데 애를 키우면서 한 달에 열흘, 한 달에 15일 그리고 시간도 길지 않아요 남한테 몇 시간 맡겨놓고 애를 키우면서 돈벌이 하기가 너무 좋더라 이러면서 경상북도에 경상북도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가 구룡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 구룡포 사람들이 쌀 한 대를 먹고 보리쌀 서말을 먹고 시집을 가야 아주 잘 사는 집 딸이라고 말할 정도로 구룡포가 그렇게 벽지 중에 벽지였는데 이곳에서 해녀들이 많이 발생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다가 좋고 가난하고 이로써 이 해녀들이 경상북도 구룡포에 많이 있게 됐습니다 [경북-시기-결혼한 이후, 물질연습-단기간 자력으로 배움, 발달시기-1970년 경, 발달계기-고무옷 등장, 물질시간-3~5시간, 주요 채취물-미역, 우뭄ㅅ가사리, 성게, 어로방법-같음, 물질차이점-숨비소리, 곡갱이 사용, 직업관차이-긍지와 자부심/제주-시기-10~16살경 해녀 수업 시작, 물질연습-정식 핸수업, 발달시기-개항기(20세기) 육지물질 시작, 발달계기-일본시장 개방, 물질시간-재래봉 30분정도, 주요 채취물-전복, 미역, 우뭇가사리, 어로방법-같음, 물질차이점-숨비소리, 비창이용, 직업관차이-위함한 직업] [해녀어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 골든벨 1.해녀들은 수영선수보다 물 속에서 오래 버틴다. 2.해녀들은 선천적, 유전적으로 다르다. 3. 해녀는 우리나라 전 해안에 분포하고 있다. 4.해녀는 혼자서 어업을 한다. 5.해녀어업에 필요한 정비는 고무옷, 곡갱이(호미), 물안경, 산소통이다.] 자 마지막으로 다섯 가지 질문을 한번 드려볼게 여기 다섯 가지 다 맞추신 분에게 제가 선물을 하나씩 드리려고 네 해녀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인데 1번 해녀들은 수영선수보다 물속에서 오래 버틴다 맞으면 O 틀리면 X 다섯 개 다 맞으면 선물 드릴게요 맞으면 O 선생님들 O 전부 O 저 뒤에 저 뒤에 계신 선생님은 X입니까? 정답은 X입니다 왜 x냐면 해녀들은 무리를 하지 않아요 수영선수들은 죽기 살기 아니면 죽기살기로 수영을 해야 돼요 물속에 발레하는 선수들은 죽기살기 아니면 죽기살기로 물속에 들어가야 돼요 해녀들은 죽기살기로 했다가는 죽어요 구해 줄 사람 아무도 없어요 해녀들은 자기가 자기의 몸을 알아요 어느 정도 숨을 참고 어느 정도 숨을 뱉어야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지 해녀들은 압니다 수영선수하고는 달라요 그래서 해녀들은 수영선수보다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최고 2분, 1분, 보통 1분 해녀들은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다르다 맞으면 O 틀리면 X 오 요거는 맞으시네 X 자 해녀는 우리나라 전 해안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해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숫자가 적지만 서해안에도 다 있어요 강원도까지 있어요 휴전선 부근까지 있어 강원도 해녀들이 있어 충청도 해녀 있어 북한에도 있습니까? 북한에 있다고 들었어요 북한에 있다고 들었어 왜냐하면 바닷속에 있는 돈이 되는 것을 따야 되잖아요 미역이나 다시마를 그럼 누가 따겠어? 해녀는 혼자서 어업을 한다 맞으면 O 틀리면 X 해녀들은 혼자서 어업을 안 합니다 같이 공동으로 공동체 문화예요 자 다섯 번째 해녀 어업에 필요한 장비는 고무옷, 호미, 물안경, 산소통이다 맞으면 O 틀리면 X 그렇죠 산소통은 아니죠 자기 숨으로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는 게 해녀어업입니다 시간이 다 돼서 오늘 제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강의 재밌으셨나요? 네 다음에 제 2탄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해주신 우리 독도재단의 김수희 부장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일의 바다톡톡도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저희 10월 25일 이 시간에 또 강연 있으니까요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