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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련[南宮鍊]
                                                        출생~사망 : 1916~2006년 (관직:사장, 경영인, 언론인)
                                                        초기 한국 해운을 이끈 경영인
                                                        남궁련은 1916년 경기도 양주에서 당시의 일류 직종인 측량기사였던 남궁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0년 니혼대학(日本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49년 극동해운을 설립하였다. 그는 1954년부터 59년까지 대한해운공사(大韓海運公社)1) 사장을 역임하였다. 1959년 한국석유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았다. 1961년 5·16 직후 남궁련은 한국 정부의 수출 주도형 산업화 · 중공업화 정책에 발맞춰 견실한 기업가로 성장하였다.
                                                        해운업에 관여했던 남궁련은 조선공업의 발전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1968년 민영화된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고 1988년까지 경영하였다.
                                                        그는 대한조선공사회장 시절 대형선박 수출에 앞장선 공로로 1972년~1973년 연속으로 은탑산업훈장 ․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1974년 ‘수출의 날’ 포장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직접 해외를 순방하며 선박을 수주하였고, 노르웨이 · 핀란드와 무역 · 경제 협력을 성사시켰다.
                                                        한국 · 노르웨이 경협회장과 노르웨이 선박 건조에 대한 공로로 1984년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1급 기사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과 1980년대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해운 · 조선업의 불황으로 인해 새로운 배의 수주가 원활하지 않고 경영이 악화되자 조선공사를 한진그룹에 매각하였다.
                                                        남궁련은 관료 · 정치인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64년 경제과학 심의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66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72년 12월 유신헌법2)으로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출마하여 종로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1962년부터 1963년까지『한국일보』사장을 맡는 등 언론계에도 참여하였다. 2006년 2월 22일 사망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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