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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출생~사망 : 1832~1903년 (관직:상인, 항해가)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킨 상인, 항해가
                                                        오페르트는 1867년 조선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 ~ 1898)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1)의 유해를 묘소에서 꺼내 위협하려 했다가 묘소를 파헤치던 중에 나온 생석회(massive stone slab) 때문에 실패했다.
                                                        그는 함부르크(Hamburg)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 집안 출신이다. 다른 두 형제인 율리우스(Julius Oppert)와 구스타프(Gustav Solomon Oppert)는 독일의 대표적인 동양학자(Orientalists)였고, 오페르트는 1851년 홍콩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867년 회사가 파산할 무렵, 당시 서구와 통상을 거부하던 조선과의 교역에 흥미를 느꼈다.
                                                        1866년 영국인 모리슨과 함께 충남 아산만으로 진입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했다. 같은 해 다시 강화도(江華島)의 갑곶진에서도 통상을 요구하려다 때 마침 일어난 병인박해(丙寅迫害)2)로 인해 실패했다.
                                                        그 후 오페르트는 상하이에서 1857년 3월 조선에 한 번 입국한 적 있는 프랑스 신부 스타니슬라스 페롱(Stanislas Féron, 1827 ~ 1903)과 함께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 후 1867년 4월 30일 그는 미국인 대부호 젠킨스( E. F. B. Jenkins)가 지원한 자금과 무기를 바탕으로 100여명의 중국인과 20여명의 동남아인을 모집해 태운 배로 조선에 들어왔다. 당시 그는 자신을 러시아 군대라고 둘러댔다. 그날 밤 덕산군에 도착한 그는 도굴을 시작하다가 실패 후 퇴각했다. 그 후 다시 인천 영종진에 상륙하여 통상을 요구하다가 물러갔다.
                                                        1880년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A Locked Country, Trips to Korea)』을 출간했다. 이 책은『하멜 표류기』와 함께 서양인이 쓴 한국의 주요한 역사자료이다. 책의 내용은 지지 · 인종 · 국법과 정체 · 역사 · 풍속 및 관습 · 종교 · 언어와 문자 · 산업 · 박물 · 상업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쳐 6장으로 나눠 서술되었다. 19세기 서양인에 의한 조선 연구의 하나로, 이 책은 서지학적 가치가 크다. 또한 오페르트가 어떤 목적으로 진입하려 했는지, 그 행위의 전제로서 품었던 조선에 대한 그의 인식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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