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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트 발린[Albert Ballin]
                                                        출생~사망 : 1857~1918년 (관직:기업가)
                                                        최대의 해운회사를 세운 항해의 제왕
                                                        1886년 5월 22일, 하파크(HAPAG, Hamburg America Line : 함부르크-아메리카 해운회사)는 이 항구지역 출신의 유대인이 경영하는 여행사 사장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하파크 역사상 가장 운 좋은 결정이었다. 이런 결정을 한 인물은 최고의 지성과 야망을 갖춘 29세 청년 알베르트 발린이었다.
                                                        바로 그 결정 순간, 그와 하파크 앞엔 가파른 성공의 길이 열렸다. 훗날 발린은 “자신은 그때 결코 젊지 않았으며, 하루도 걱정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알베르트 발린은 물론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읽었고, 더 잘 이해했다. 그는 바로 이것으로 독일 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 중 하나가 되었다. 주요 분야는 해운업이었다.
                                                        1857년 8월 15일, 함부르크에서 가난한 유대계 덴마크 상인의 13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세 때 갑자기 세상을 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행사를 관리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맡았다. 그의 학력은 아버지의 가계에서 배운 업무를 포함하여 유대계 초등학교에서 배운 4년이 전부였다. 당시 그는 이민자들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정기선의 배표를 예약해주고 이민 수속을 대행해주는 일을 했다. 초창기 발린은 영국으로 가는 간접적인 이민 업무를 한 것이다.
                                                        1847년 창립되어 지명도가 치솟던 하파크가 위기에 처했다. 회사가 침몰하기 직전, 주주들은 이사회를 해산하고 발린의 영입을 결정했다. 그는 1886년 연봉 1만 마르크를 받는 여객부 실장으로 하파크에 입사했다. 2년 후, 31세의 발린은 최연소 부장으로 승진했고, 1890년까지 회사의 자본금을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1899년 하파크의 총지배인이 된 그는 오늘날 하파크 사를 세계에서 가장 큰 해운회사로 키웠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으며, 항해에 대해 무지했던 황제 빌헬름 2세의 친구가 되었다.
                                                        발린은 미래를 보는 능력, 즉 앞으로 도래할 것에 대한 놀라운 직감력을 지니고 있었다. 1891년 여행업에 있어서 근대적인 ‘선박 유람’ 개념을 첫 번째로 도입하고 개척한 것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1891년 독일 황후 빅토리아(Augusta Victoria of Schleswig-Holstein)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SS Auguste Victoria) 호’는 함부르크를 떠나 사우스햄튼(Southampton)을 경유, 뉴욕으로 출항했다. 2년 후 빅토리아 호는 도시 관광을 포함해서 지중해 13개 항구를 6주간 항해했다. 또 1900년에 그가 도입한 쾌속선 ‘빅토리아 루이제(Prinzessin Victoria Louise) 호’는 대서양을 가장 빨리 횡단하는 기록을 세워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금융자본가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 ~ 1913)이 그에게 돈과 권력을 줄 테니 뉴욕으로 오라고 제안하자 발린은 “자신도, 하파크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는 20세기 초 독일과 영국의 해외 팽창정책을 보고 유럽에서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을 염려했다. 1908년부터 1914년 7월 말까지 독일과 런던을 오가며 잔인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중재를 시도했으나 끝내 전쟁은 막을 수 없었다. 1918년 11월 9일, 독약을 마시고 독일제국과 함께 숨을 거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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