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여개의 해양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전체 인물 목록
전체 인물 목록 닫기
                                                        레오 폰 카프리비[Leo von Caprivi,]
                                                        출생~사망 : 1831~1899년 (관직:해군장관)
                                                        해군장관으로 함대를 지휘한 정치가
                                                        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 1815 ~ 1898)의 후임자로서 1890부터 4년간 독일제국의 총리를 지냈다.
                                                        그는 베를린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849년 군에 입대 후 제1군 참모부에 배속되어 1866년 오스트리아 원정에 참전했다. 1870~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시 제10군단 참모장을 맡았고, 오를레앙(Orléans) 전투와 메스(Metz) 전투에 참전했다.
                                                        1883년 해군장관(Chief of The Admiralty)으로 임명되어 함대를 지휘했으며 제국의회(Reichstag)에서는 해군부를 대표했다. 1890년 3월 독일제국 총리와 프로이센 총리(Minister President) 겸 외무장관(Foreign Ministe)으로 임명되었다.
                                                        총리 재임 시 이룩한 최초의 업적은 1890년 7월 아프리카에서의 세력권 분할을 두고 갈등을 빚던 영국과 일반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이때 독일은 동부 아프리카와 나이지리아에서 호전적 정책을 포기했고 헬골란트(Heligoland)를 받는 조건으로 잔지바르(Zanzibar)에 대한 권리를 철회시켰다.
                                                        1890년 영국-독일 협정에 뒤이어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기타 여러 국가와의 통상조약도 체결했다. 이런 성과로 황제 빌헬름 2세(William II)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백작(Count) 작위까지 받았다. 그 후 의회 내에서 군 조직 개편문제로 신뢰성에 위기가 초래되었지만 안건을 성공적으로 관철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복무기간 단축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구식 사고에 젖은 군인들로부터는 반감을 샀다.
                                                        1894년 프로이센 내각의 총리직을 사임했다. 후임으로 오일렌부르크(Friedrich Albrecht zu Eulenburg, 1815 ~ 1881) 백작이 임명되었다. 그해 10월 형법 수정안(Umsturz Vorlage)과 관련해 오일렌부르크와 카프리비 간의 의견 차이가 표출되자 빌헬름 황제는 두 사람 모두 해임시켰다. 이후 완전히 은퇴하여 말년을 보냈다.
                                                        첨부파일 :  
                                                        badge
                                                        Q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해양재단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