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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賢正]
                                                        출생~사망 : ~년 (관직:승려)
                                                        대마도를 조선 땅으로 기록한 승려
                                                        1817년 11월 27일 한밤중, 일본 규슈(九州) 앞바다에 위치한 오시마우라(大島浦)라는 섬에 동해상에서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조선 배 한 척이 표착했다. 불상(佛像) 768좌가 실린 그 배에는 현정 등 승려 15명을 비롯해 27명의 조선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관(朝鮮館)’이 있던 나가사키(長崎)로 이송되어 4개월 정도 머물렀다. 이듬해 7월 14일 대마도를 거쳐 원래 목적지였던 해남으로 돌아왔다.
                                                        이와 같은 내용을 1821년 능주(綾州, 현 전남 화순) 쌍봉사의 화원승(畵員僧 : 사찰 건물에 단청을 입히는 등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승려) 현정이『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당시 승려 현정은 해남 대둔사 천불전(千佛殿)의 불상 조성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경주에서 조성한 불상을 배에 싣고 장진포(長津浦)에서 고래잡이로 유명한 장생포(長生浦)로 갔다.
                                                        마침 해남으로 가는 상선 하나와 임대계약을 맺고 배에 실려 있던 1천좌의 불상(佛像) 중 768좌를 옮겨 싣고 11월 24일 장진포를 출항하였다.
                                                        울산 군령포(軍令浦)를 거쳐 부산 동래로 항해하던 배는 ‘동래를 수십 리 못 미친 곳에서 정오 무렵 서북풍으로 생각되는 바람이 갑자기 일어난’ 기상악화로 떠밀려가기 시작하였다. 현정은 극도로 악화된 기상 속에서의 사투(死鬪)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급히 뱃머리를 돌리려고 전 승객이 매달려 돛폭을 돌리려 하였으나 파도가 산처럼 높은데다 돛이 바람을 가득 안고 있어서 세 번이나 실패했다. 그러자 사공이 현정에게 말하기를 “바람이 이러한데 억지로 돌리려 하다가는 필경 배가 뒤집히고 말 겁니다. 이럴 때는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맡기는 것만 못 합니다. 죽고 살기는 하늘에 맡기고…… ”
                                                         
                                                        서북풍에 떠밀려 표류하였던 배는 동래 앞바다에서 일본 후쿠오카(福岡) 앞바다까지 약 100여 마일(200 리) 거리를 단 이틀 만에 도해(渡海)하였다.
                                                        일본의 도움으로 다시 해남으로 돌아온 현정은 그간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하멜표류기』1)를 능가한다고 평가되는『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을 남겼다.
                                                        그는 표류상황과 송환과정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겪었던 일과 당시 일본의 풍습,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2)
                                                        특히 일본의 표류민 처리절차를 자세히 적어 표류민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는 대마도 사람들의 증언도 담았다.3)
                                                        1818년 1월, 조선인 표류민을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 일본화가 우키다 잇케이(浮田一蕙, 1795~1859)가 그린 '조선표객도(朝鮮嫖客圖)'가 전해지고 있어 현정의 주장에 신뢰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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