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여개의 해양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전체 인물 목록
전체 인물 목록 닫기
                                                        현시학[玄時學]
                                                        출생~사망 : 1924~1989년 (관직:군인)
                                                        해군창설에 기여한 호국 인물
                                                        해군창설의 주역으로 6·25 당시 크게 활약했던 현시학 제독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현봉학(玄鳳學)1)교수와 민중신학자 현영학(玄永學)2)교수의 동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 현원국, 어머니는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로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했던 신애균 여사다.
                                                        함남 영생중학교를 졸업 후 조국이 광복되자 남한으로 내려왔다. 1946년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전신) 1기로 임관하고 초창기 해군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시학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전투에 참전하고 공을 세웠다. PC-704 함장으로 있던 1950년 7월, 첫 번째로 참전했던 서해안 봉쇄작전에서 12척의 북한 수송선단을 격퇴하였다.
                                                        8월에는 경남 고성에서 통영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에게 백발백중의 함포사격을 가하면서,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3)을 지원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수호하는데 활약했다. 또 황해도 연백으로 출동하여 아군 특수부대의 월사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그의 지원 하에 월사리에 상륙한 1,200명의 국군 유격대는 북한군 6군단 예하 1개 대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 외에도 6만여 명의 황해도 피난민과 반공청년단원 100여 명을 구출하였다.
                                                        현시학은 북한이 부설한 기뢰를 제거하는 목포항 소해작전과 3,000여 개의 기뢰를 제거한 원산만 소해작전에 참여하였다. 그 공로로 금성을지무공훈장 ‧ 금성충무무공훈장 ‧ 미국동성훈장을 받았다. 6·25 이후 1전단 사령관, 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6년 해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모로코 ‧ 이란 ‧ 멕시코 대사직을 수행하며 국익을 위해 노력했다. 전쟁기념사업회는 1989년 타계했던 그를 ‘호국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거제 옥포만에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첨부파일 :  
                                                        badge
                                                        Q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해양재단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