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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출생~사망 : 1536~1598년 (관직:태합)
                                                        대륙정복을 꿈꾼 풍운아
                                                        그는 오와리(尾張) 출신으로 초명(初名)은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郞)였으나 29세 이후에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로 불렸다. 센고쿠시대(戦国時代)의 무장으로 기지와 용병이 뛰어났던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부하로 있었다.
                                                        히데요시는 각 지방을 정벌하여 세력 확장에 공을 세웠고 오다가 암살당하자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았다. 이 때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다이라(平)씨로 성을 바꿨다.
                                                        도요토미는 1584년에 동부지역의 큰 세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켰고, 1585년에 관백(關白 : 일본 천황을 보좌하는 직책)에 오르자 후지와라(藤原)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이듬해 대정대신(大政大臣)에 오르고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 받았다. 1587년에 센고쿠시대의 마지막 반대세력을 제압하여 100년간에 걸친 혼란을 를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함으로서 모모야마(桃山)시대1)를 열었다.
                                                        국내를 통일한 토요토미는 중국 대륙의 정복을 획책하였다. 1587년 당시 대마도주 소 요시게(宗義調)를 통해 조선과의 교섭을 시작하여 명나라 정복에 조선이 협력할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4년간에 걸친 교섭이 실패로 돌라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1년 관백의 자리를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에게 양도하고 자신은 태합(太閤)이 되어 정한령(征韓令)을 선포하고 전쟁준비에 착수하였다.
                                                        1592년 가토 기요마사ㆍ고니시 유키나가 등을 선봉장으로 하여 20만여 명의 육군과 수군으로 조선을 침략케 하고 그는 나고야(名護屋) 성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개전 20일 만에 한성(漢城)을 함락시킨 히데요시는 본격적으로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국할정책(國割政策)을 추진하였다. 이는 조선을 히데요시 자신의 직할령(直轄領)으로 삼고 출병한 무사들을 대관(代官)으로 삼아 군정(軍政)을 실시한다는 것과 농민을 농업에 종사시켜 연공(年貢)을 징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ㆍ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와 함께 일본에 건너 온 명나라의 강화 사절 심유경(沈惟敬)을 만난 히데요시는 7조목(條目)2)을 조건으로 화의를 추진하도록 지시하고, 이 틈을 이용해 조선의 침략군에게 반격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진주성을 공격하였다.
                                                        그 후 약 3년 동안 일본과 명나라 사이에 강화 교섭이 진행되면서 전쟁은 거의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1596년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이듬해인 1597년 다시 군대를 동원해 정유재란을 일으켰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히데요시는 조선에서 철군(撤軍)을 명(命)하는 유언을 남기고 1598년 후시미(伏見) 성에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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