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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봉훈[孫鳳勳]
                                                        출생~사망 : 1915~1994년 (관직:)
                                                        갯벌의 보석 ‘천일염’을 개발하다
                                                        천일염전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경제적 생활기반중 하나이다. 천일염전의 개발과 보급은 섬사람들에게 있어 일종의 생활혁명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 비금도에서 최초로 천일염전 개발을 주도하고 성공시킨 손봉훈(孫鳳勳)의 도전과 개척정신이 지닌 의미는 매우 크다. 사실 한반도 서남해는 강우량이 많아 천일염 생산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해수의 온도차이로 극복하고, 1946년 서남해 비금도 수림리에서 최초로 천일염1) 생산에 성공한 사람이 손봉훈이다.
                                                        그는 신안군 비금도 수림마을 출신으로 광복이후 최초로 천일염전 개발하고, 천일염전 기술원 조합을 만들어 염전 개발기술을 보급하였다. 오늘날 신안군이 천일염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역할이 숨어있다. 손봉훈은 일제 강점기 만주에 머물고 있던 당시 만주에 드나드는 비금도 사람들을 통해 평양염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러다가 지인들의 초청으로 광복되기 2~3년 전 평양염전으로 가서 1년 정도 염전 일을 체험했다.
                                                        염전 일을 하면서 손봉훈은 고향에 가서 천일염전을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이때 염전 일을 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되었다. 그 후 북한의 귀성염전으로 일하러 갔던 조카 박삼만(朴三萬)이 고향에 돌아오자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천일염전 개발에 나섰다.
                                                        1946년 봄 손봉훈과 박삼만은 지역주민과 함께 옛 화염터 자리에 1정(1町=3,000평, 약 9,900 제곱미터) 규모로 천일염전 개발을 시도하였다. 이후 범위를 확대하고 1호 염전을 비금도 구림리에 완성하였다. 이 염전은 최초라는 의미로 ‘시조 염전’으로 불리고 있다. 손봉훈의 활동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점은 1호 염전 개발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기술원들을 규합하여 염전기술보급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데 있다.
                                                        1호 염전 축조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손봉훈을 중심으로 ‘수림천일염전개발조합’을 조직하고, 인근지역의 염전개발을 주도해 나갔다. 이러한 활동 내용은 민간에 보존되어온 『비금수림천일염개발조합(飛禽 樹林天日鹽田開發組合)』과 『신안비금 향토자료집』에 잘 남아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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