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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후[徐厚]
                                                        출생~사망 : ~년 (관직:사간원정원, 직제학, 홍문관부제학, 예조참의, 충주목사)
                                                        판옥선을 만들어 왜적에 대비하자
                                                        “남방의 전함은 옛날부터 두어 오는 것인데, 지금은 대맹선(大猛船)을 쓸데없다 하여 다 버리고 소선(小船)만 쓰고 있습니다. 소선이 다른 배를 쫓기에는 빠르지만 육박하여 싸우는 데는 적합하지 않으며, 또 전사를 많이 태우지 못하고 적군이 기어오르기도 쉽습니다. 만일 적이 칼을 빼어들고 돌입하면 맹사(猛士)가 많더라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대함은 높고 가팔라서 기어오르기 어렵게 되고 내려다보며 제어하기에는 편리 합니다. 이것이 모두 신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이므로 감히 아룁니다.”
                                                         
                                                        중종 16년(1521) 5월, 경연 참찬관(參贊官 : 조선 시대 경연청에 속한 정3품 벼슬) 서후가 대맹선(大猛船 : 조선시대 수영에 속한 3층으로 된 큰 싸움배로서 사면에 창이 나 있다)을 하루속히 건조하여 왜구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강력히 주청하였다.
                                                        조선은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1)을 계기로 기존의 맹선체제(猛船體制)2)를 포기하고 대형 선박인 판옥선 건조와 화기 개량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대맹선을 전투용으로 개량하고 새로 만든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의 주력 군선으로 맹활약하였다. 서후는 문신이면서도 평소 군기(軍器)에 큰 관심을 기울여 직제학 재임 중에는 100근이나 되는 활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또 편조전(鞭條箭)을 개량하여 120근의 궁노(弓弩 : 석궁 무기)를 제작하였다. 그는 경연 참찬관으로서 전선의 건조와 수리와 관련된『군문요람(軍門要覽)』, 『장훈원구(將訓元龜)』등의 책을 편찬하고 해방(海防)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문무를 겸비했던 서후는 1498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 장령 등의 언관(言官)을 역임하였다. 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예조참의 ‧ 충주목사 ‧ 영흥부사에 제수되었다. 영흥부사 재직 시절 민생을 후하게 하고 사습(士習 : 선비의 풍습)을 바르게 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폐(時弊) 11조3)를 상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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