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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응[鄭觀應]
                                                        출생~사망 : 1842~1922년 (관직:상인)
                                                        근대 ‘해권사상’을 제시한 경세가
                                                        만약 먼 바다를 지키지 않으면 적이 바로 해안의 항구를 봉쇄할 것이며, 수로가 막히게 될 것이다. 만약 해안의 항구를 지키지 않으면 적에 의해 점거가 되며 총과 포의 사격에 사방이 파괴될 것이다. 그들은 진입할 수 있는 곳은 반드시 걸어 들어갈 것이며, 이로 인해 대세(大勢)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 앞 세대에서는 오직 해양방어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오늘날에는 해전(海戰)을 언급해야만 한다.”1)
                                                         
                                                        정관응의 자는 정상(正翔)으로 광동성 향산현(香山縣)에서 출생한 19세기 후반 중국의 ‘저명한 민족 자본가’였다. 그는 일찍이 벼슬길을 포기하고 상해(上海)로 가서 상업을 배웠고, 양행(洋行)과 태고윤선공사(太古輪船公司)에서 매판(買辦)을 했다.
                                                        그 후 윤선공사에 투자를 하였으며, 장기간 상해기기직포국(上海器機織布局),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 한양철창(漢陽鐵廠) 등의 양무운동과 관련된 기업의 총판(總辦)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청조 말기 개혁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는 대내적으로 정치를 개혁하고 공업과 상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켜 서구의 경제적 침략에 대비하고 그들과 상전(商戰 : 무역전쟁)을 주장하면서『성세위언(盛世危言)』을 저술하였다.
                                                        양무(洋務)와 해양방어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 이 책은 함선(艦船) 관련 무기 및 장비, 해군 기지, 인재 양성, 해로(海路), 후근(後勤 : 보급과 지원) 등에 상당히 정확하고 완벽하게 논술하였다.
                                                        특히 제2차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8개 연합국의 북경점령 등 일련의 굴욕적 사건을 경험한 정관응은 해양방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우 독특한 해양방어사상을 제기했다.
                                                        그는 근대화된 해군 건설, 해군과 육군의 상호연계 실행, 먼 바다와 항구를 함께 중시하는 것, 구역을 나누어 중점방어를 실시하는 것, 민중에 의거하여 해양방어를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
                                                        정관응의 전략적 사고는 ‘육지를 중시하고 바다를 경시’하는 중륙경해(重陸輕海)와 ‘이치를 중시하고 도구를 경시’하는 중도경기(重道輕器)의 전통적 관념을 초월하고 진보된 국방관(國防觀)을 보여주었다.2)
                                                        먼 바다와 해안의 항구를 동시에 중시하는 해양방어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관응은 특히 다음 2가지 사항을 강조하였다. 첫째, 해양방어 건설 가운데 포대(砲臺)의 설치와 전함(戰艦)의 건조를 서로 결합시켜야 한다. 그는 “군함이 있더라도 포대가 있으면 싸움은 할 수는 있지만 방어를 할 수 없으며, 외관상으로는 강하여 넘치지만 내부적으로는 항상 부족함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인식했다.
                                                        둘째, 연해지대는 구역을 나누어 ‘중점 구역’을 설정하고 여기를 중심으로 방어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그는 “북쪽을 방비하면 바로 남쪽에 틈새가 생기고, 남쪽을 방비하면 바로 북쪽이 허술하게 되고, 가운데를 방비하면 남쪽과 북쪽에 간격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지만 방비를 잘해두면 곧 병력이 부족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항구연안’에 대한 단조로운 방어사상을 초월하여 해양보호를 국방전략으로 격상시키고, 근대 ‘해권사상(海權思想)’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제시한 경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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