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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남[裵慶男]
                                                        출생~사망 : ~1597년 (관직:장수)
                                                        죽음으로 잘못을 만회하다
                                                        임진왜란 초기 부산진성 전투에서 전사한 정발(鄭撥, 1553~1592)의 후임으로 부산진 첨절제사(僉節制使 : 종3품 무관)로 발령받아 내려가던 배경남은 부산으로 가지 못하고 전라도 유격장(遊擊將 : 종5품 하품계의 유격장군)이 되었다. 곧 바로 전투에 뛰어든 그는 일본군의 머리 36급을 베고 우마 68필을 빼앗는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로를 보고받은 순찰사(巡察使 : 조선시대 재상으로서 왕명을 받아 군무를 통찰하던 정2품 도체찰사)는 조심성 없이 작전을 수행했다고 보고하여 배경남은 오히려 중벌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배경남은 적의 머리 1급을 베고 도원수와 순찰사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패주를 거듭하는 영남지방의 전황 속에 순찰사 권율(權慄)1)은 도망만 다니는 장수라는 잘못된 보고를 하여 파직당했다.
                                                        그는 스스로 잘못 보고한 오명을 씻고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에서 종군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연해안인 강진 고을에서 성장한 관계로 배에 대한 것을 조금 알고 있으므로 수군에 소속되어 힘껏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이러한 의지를 보고받은 충무공은 조정에 배경남의 정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는 장계를 올리고 그를 새로 만든 전선의 빈자리에 임명하였다.
                                                        이순신 휘하에서 좌별도장(左別都將)이 된 배경남은 제2차 당항포 해전2)에서 왜 대선을 격침시키는 큰 활약을 하여 조방장(助防將 : 주 장군을 도와 적을 막는 장수로 무재를 갖춘 수령이 맡은 임무)에 올랐다. 배경남은 1597년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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