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처음으로
바다의 국경선, 해양경계획정 회담을 시작하다

양 희 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 소장

한중일간 해양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남중국해문제에서 부터 동중국해, 동해, 그리고 황해 수역까지 어느 하나 ’평화적 관리’방식 보다는 국가별 이익을 중심으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역시 불법어업, 이어도·독도·해상교통로 문제 등 다양한 국내외 갈등이 해양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다. 해양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국가간 해양경계선이 없다는데 있다. 우리나라의 바다 국경선은 일본과 대한해협을 대상으로 설정한 북부대륙붕 경계선이 유일하지만, 이 경계선 또한 완전한 경계선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대륙붕의 상부 수체, 즉 EEZ(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경계선을 포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양경계선의 부재는 다양한 갈등을 야기시킨다. 국가 해양관할권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해양자원의 이용과 개발, 시설물 설치, 해양에서의 법집행 등이 모호해진다. 해양자원의 보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적극적 시책을 추진하는데도 한계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어업협정 및 석유가스 공동개발협정 등 형식을 통해 자원의 이용과 보전을 위한 임시적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이 역시 해양경계선을 획정하기 전까지 갈등 관리를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가 있다.

해양경계획정 문제는 특히 1982년 채택되고 1994년 발효(우리나라는 1996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으로 인해 보다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영해라는 좁은 해역을 가진 연안국이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대륙붕은 최대 350해리 혹은 2500수심에서 100해리)을 갖게 되면서 다수의 국가들은 관할권 주장이 중첩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한중일 삼국은 상호 대향거리가 400해리 미만이라는 점에서, 모든 수역에서 권리 주장 중첩현상이 발생한다. 이에 한중 및 한일은 각각 1996년과 1997년 해양경계획정 회담을 진행하였으나 현재까지 해양경계의 진척은 되고 있지 않다.

그림1 한일간 북부대륙붕 경계선
< 그림1 한일간 북부대륙붕 경계선 >


주목할 만한 것은, 2014년 한중 정상간 합의에 따라 2015년부터 해양경계획정 추진이 공식화 되었다는 데 있다. 이는 그동안 국장급 채널로 진행되어 온 회담이 차관급으로 격상된다는 것 외에 실무급이 아닌 국가 간 공식 회담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든지 한중간 해양경계선이 획정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15년 12월 첫 번째 한중 차관급 해양경계획정 회담이 진행되었으며 2016년 2차례의 국장급 회담, 2017년 1차례의 국장급 회담이 개최되었다. 해양경계는‘바다의 국경선’이라는 점에서 국가의 종합적 이익이 고려되어야 하며, 차관급 및 국장급, 그리고 세부사항 등에 대한 실무 전문가 그룹 간의 지속적 협의가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에서 수년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인간의 활동영역과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국가의 집중적 역량 강화 방안이 수립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중 간 해양경계획정 회담에서는 황해와 동중국해 일부 수역을 대상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황해는 북한, 동중국해는 일본 등 제3국이 주장하는 해양관할권이 함께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수역을 대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3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해양관할권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간에는 특별히 민감한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국의 주된 관심 항목을 중심으로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나, 이 역시‘바다의 국경선’이라는 점에서 조심스럽다. 국경은 한번 획정되면 종국적이고 변경 불가하다는 점에서 국가별 최대 이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협상을 하는 중요한 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황해를 둘러싼 갈등요소가 영유권과 같은 첨예한 대립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해양경계획정의 조기 확정은 양국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동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불법어업으로 얼룩진 황해에서 해경은 분명한 법집행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며, 수산 및 광물자원의 이용과 보전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지역해 환경보호와 해양안전, 수산자원 공동연구 등 양국의 협력체계 도입 또한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자국의 관할범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각각 동일한 수역범위를 협력수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자국 수역 내의 수산자원 관리 조치를 강화하는 것 역시 자국, 그리고 지역해 자원의 지속가능한 수준으로의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그림2 한중간 제1차 차관급 해양경계획정 회담(외교부)
< 그림2 한중간 제1차 차관급 해양경계획정 회담(외교부) >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해양경계획정을 추진하는 대상해역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협상 상대국의 전략적 접근, 주요 고려요소와 요소별 손익 분석이 명확해야 한다. 해역별 국가의 주요 관련이익이 항목별, 그리고 총체적 가치분석으로 연계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일부 해역은 수산자원과 생물다양성이 다양할 수 있고, 어떤 해역은 군사적 활용성이 중요할 수 있으며, 어떤 해역은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부존되어 있을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접근전략과 함께 상대국의 이해요소를 함께 분석하고, 협상 틀 내에서 상호 조정할 수 있는 요소까지를 도출하여야 가능하다. 이와 동시에 주의해야 할 것은 해양경계획정은 철저하게 국가간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조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즉, 우리 것을 나누는 작업이 아니라, 양국 공동의 주장을 어떻게 조정하여 나눌 것인가 하는 작업이다. 이는 외교적 협상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신뢰에는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단기적 이익’이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적 집단이익’을 중심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해양경계획정의 효과는 현재 보다는 향후 우리 미래의 세대가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중요한 터전이자 자원의 공급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3 주변수역 해양관할권 및 어업협정/공동개발수역 < 그림3 주변수역 해양관할권 및 어업협정/공동개발수역 >